오피니언 사설

‘정치 국감’말고 ‘정책 국감’을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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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다음달 6일부터 20일 동안 국정감사가 실시된다. 1988년 민주화의 산물로 관련법이 제정된 이래 20년 동안 국감이 있어 왔다. 국감은 행정부의 비리와 부실을 파헤치는 순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적잖은 경우 여야의 정치선전장으로 전락해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는 역기능도 있어 왔다. 유례없는 국제 금융대란으로 인한 민생 위기에서 국감은 행정부를 자극하고 효율적으로 견제하는 ‘정책 국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정치 국감’의 조짐이 보여 우려된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사위·조카, 대통령 부인의 사촌, 한나라당의 최고위원 2명과 전·현직 의원 등을 증인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발표했다. 민주당은 “이들은 권력형 비리 의혹이 있으며 관련법에 따라 소추(訴追)에 관여할 목적만 없다면 증인으로 부를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수사권이나 증거조사 능력이 없는 국회가 이들을 불러 무엇을 밝히겠다는 것인가. 이들과 관련이 있는 사건은 수사 중이거나 기소됐으니 사법절차에 맡기는 것이 옳다. 한나라당이 과반수여서 이들이 증인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벌써부터 국감 분위기를 이런 식으로 몰아가면 또 정치 바람이 정책 감사를 뒤덮을 것이다.

증인만큼 중요한 것이 자료다. 입법부가 행정부의 실상에 접근하려면 필요한 자료를 제때 공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행정부가 국회의원이 원하는 핵심자료는 빼고 허술한 자료를 제출하거나, 아니면 아예 이런저런 핑계로 자료 제출을 기피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당한 이유 없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그동안 불출석 증인에 대한 고발은 있었어도 자료 미제출에 대한 고발은 거의 없었다. 행정부의 업무를 방해하는 과도한 자료제출 요구는 문제다. 하지만 적절한 제출 요청에는 성실히 임해야 하는 게 행정부의 의무다. 여야와 행정부는 전례 없는 각오로 한번 성공적인 ‘정책 국감’을 만들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