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계약 손실 감수하고 파기” 코스닥 상장사, 주가는 상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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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가입한 파생상품 ‘키코(KIKO)’로 인한 파장이 확산하자 손실을 감수하고 계약 파기에 나선 회사가 나왔다. 청와대와 정부가 잇따라 키코 피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으나 증시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자 내린 고육책이다. 약국 자동화시스템 세계 2위 업체인 제이브이엠은 23일 “현재 가입 중인 6개의 키코 상품 계약을 순차적으로 모두 파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이 회사 주가는 이날 상한가로 뛰었다.

제이브이엠은 지난해 136억원의 순이익을 냈고, 올 상반기에도 252억원 매출에 8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그러나 올 들어 환율이 급등하면서 외환·씨티·SC제일은행과 맺은 6건의 키코 계약이 발목을 잡았다. 상반기에 입은 확정 손실만 13억9000만원에 달했고, 장부상 평가손실도 364억5000만원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영업이익을 다 까먹고도 22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여기다 지난주 태산LCD가 키코 손실로 흑자 부도를 내자 지난 12일 2만9000원대였던 주가는 22일 1만5000원대로 주저앉았다.

주주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회사 측은 키코 계약을 파기하기로 결정했다. 회사 관계자는 “앞으로 환율이 계속 오르면 손실이 불어날 수 있어 당장 부담이 되더라도 위험요인을 없애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키코 계약을 파기하면 장부상 손실이 일부 확정되고 위약금도 물어야 하지만 주가에는 이미 손실이 반영됐기 때문에 주주에게는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거시경제정책협의회에서도 키코 사태를 포함한 중소기업 지원대책을 논의했으나 아직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코는 은행과 기업이 맺은 사적인 계약이어서 정부가 개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키코로 흑자 부도를 내는 중소기업의 사정은 딱하지만 그렇다고 은행더러 손실을 떠안으라고 강요하기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보다 은행의 자율협약 형식으로 키코 손실을 본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주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키코 손실을 은행 대출로 바꿔 장기간에 걸쳐 나눠서 갚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기업이 손실을 한꺼번에 갚으려다 흑자 부도를 내면 은행도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이 같은 방안을 포함해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10월 초께 발표할 계획이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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