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마라톤 强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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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08년 런던 올림픽을 열면서 영국왕실은 「마라톤 우승」에강한 집착을 보였다.그럴듯한 아이디어로 채택된 것이 윈저성(城)을 출발하여 메인 스타디움에 골인하게 하자는 안(案)이었다.
에드워드 7세의 알렉산드라왕비로 하여금 출발신호 를 알리게 하고,왕족들이 모두 나와 응원하게 하면 영국선수에게 큰 힘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하지만 왕실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영국선수는 일찌감치 뒤처지고 말았다.
그거야 어쨌든 이 때의 마라톤경기는 진기한 에피소드도 남겼고,그 코스를 42.195㎞로 확정짓는 계기가 됐다.막판의 스퍼트로 선두에 나서 스타디움에 들어선 이탈리아선수가 지치고 긴장한 나머지 트랙의 반대방향을 질주하다가 그만 쓰러 지고 말았다.경기장 임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일어나 제 코스를 달렸으나 세번이나 더 쓰러진 끝에 겨우 결승점에 골인할 수 있었다.다른사람의 부축을 받았으므로 결국 이탈리아선수는 실격 처리됐고,2위로 골인한 미국선수에게 금메달이 돌 아간 것이다.
마라톤을 정식종목으로 채택한 것은 제1회 아테네대회 때부터였다.고사(故事)를 본떠 아테네 북동쪽의 마라톤에서 아테네의 올림픽 스타디움까지로 잡았는데 후에 그 거리를 실측한즉 36.75㎞였고,7회대회 때까지는 개최지의 여건에 따라 40㎞안팎을 달렸다.8회 파리대회때 일정한 거리로 통일해야 한다는 제안을 논의한 끝에 런던대회 때의 42.195㎞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발상지인 그리스나 거리를 확정지은 영국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마라톤 제패를 꿈꾼다.「올림픽의 꽃」이라 부르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종목에서의 성적이 부진해도 마라톤에서만 좋은 성적을 거두면 만족해하는 풍 조도 생겼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마라톤 강국」으로 꼽을만한 나라가 별로 없다.「자신과의 투쟁」이라 불릴 만큼 힘든 경기인 탓도 있지만 이번 올림픽의 우승자처럼 무명의 복병(伏兵)들이 불쑥불쑥튀어나오기 때문이다.우리나라는 베를린 올림픽때 손기 정의 우승으로 일찍부터 그 싹을 보였으나 이제 황영조에 이은 이봉주의 등장으로 「강국」임을 자처할 수 있게 됐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뒤를 받쳐줄만한 선수들이 끊임없이 배출돼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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