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全.盧 재판'의 역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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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법정에 두 전직대통령을 나란히 세워놓고 사형과 무기징역을구형한 것은 지금껏 역사에 없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있기 어려운일이다.우리는 전두환.노태우(全斗煥.盧泰愚)씨에 대한 구형을 보며 새삼 이 나라의 기구한 헌정사를 떠올리며 정당성없는 권력장악은 반드시 단죄받고야 만다는 엄숙한 역사의 교훈을 재확인하게 된다.
흔히 「성공하면 왕이요,패하면 역적」이라 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이 나라에도 오래내려왔지만 국민의 동의없는 정당하지 못한 집권은 아무리 성공했다해도 이제 법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다는 선례 를 우리는 만들고 있는 것이다.아울러 이들이 집권중 자행한 부정부패 역시 단죄함으로써 국내외의 권력자의 부패에 제동을 건 것도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처럼 이 재판이 우리의 민주헌정을 확고히 하는 역사적 의의가 있음을 전부터 지적해왔다.지난 4개월간의 재판과정에서 이른바 신군부의 집권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규명되고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법적인 평가가 확고해진 것도 평가할 일이다.
그러나 이 재판이 복수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고,말 그대로 역사를 바로잡자는데 큰 뜻이 있다고 볼 때 미흡하게 여겨지는 대목도 한두군데가 아니다.우선 5.18의 진상규명에 있어 발포경위 등은 아직도 분명히 밝혀지지 못했고,당시 최규 하(崔圭夏)대통령의 역할과 그의 하야(下野)과정 등도 분명치 않다.
또 재판진행과정에 있어서도 「역사적 법정」답지 않은 무리한 심리강행과 변호인과의 갈등 등으로 부분적인 파행국면이 있었던 것도 유감스러웠다.이런 몇가지 점때문에 당초 정치적 결단에 의해 이 법정이 열리게 됐다는 점과 맞물려 다소 석 연찮은 인상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全.盧씨를 위시한 피고측이 역사적인 법정에서 진실을 밝힌다는 진지한 자세보다는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법정전략」으로 일관한 것도 유감스러웠다.
이제 남은 재판부의 선고를 기다리면서 이 희대의 재판을 어떻게 역사의 진전방향과 국민적 통합에 부합시켜 나가느냐가 우리의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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