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은메달도 자랑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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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31일 오전(현지시간) 배드민턴장은 온통 중국의 축제분위기였다.여자복식 결승에서 게페이-구쥔조가 한국의 길영아-장혜옥조를2-0으로 완파하고 우승,배드민턴에서 중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때문이었다.그러나 은메달을 목에 건 길영아와 장혜옥의 표정은 너무 대조적이었다.시무룩하다 못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그나마 길영아는 은메달을 목에 걸고는 웃음기를 찾았으나 장혜옥은루셍롱의 키스마저 피해버릴 정도였다.당초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꼽혔던 여자복식.1번시드를 배정 받은 길-장조가 결승에서 힘한번 제대로 쓰지못하고 완패한게 충격이라면 충격일 수 있다.아직어린 장혜옥이 자기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은메달리스트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관중들은모두들 일어나 박수를 쳐주는데 선수 스스로는 박수를 받을 여유가 없었다.
「은메달도 자랑스럽다」.금메달보다 못하지만 부끄러워하거나 눈물을 흘릴 일은 결코 아니다.우리가 언제부터 금메달이 아니면 메달로 취급도 안해주는 풍토가 됐을까.몬트리올올림픽에서 양정모선수가 첫 금메달을 딴게 불과 20년전이다.이제는 「싸우는」 스포츠에서 「즐기는」 스포츠로 전환할 때가 됐다.1년 3백65일을 태릉선수촌에 묶어놓고 「금메달 기계」를 만드는 작업도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됐다.올림픽이 끝나면 또다시 프로야구.농구에열광할게 뻔하다.평소에는 관심도 없 다가 올림픽때만 되면 하키.핸드볼을 「틀림없는 금메달」로 내세우는 풍토에 선수들도 질려있다. [애틀랜타에서] 손장환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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