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기의 한복판에서 입 조심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국 증시가 ‘파이낸셜 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선진지수에 편입됐다는 낭보마저 금융 불안의 쓰나미에 묻혔다. 외국 기관투자가들의 묻지마식 매도를 국민연금이 매일 수천억원씩 쏟아 부어 간신히 틀어막는 살얼음판이다. 지금은 누구도 이번 위기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어떻게 수습될지 장담할 수 없다. 이렇게 변동성이 크고 심리가 불안할수록 정책 당국은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말을 조심하고, 행동은 신중해져야 한다.

그제 청와대 고위 당국자가 “이번 경제 불안은 무난히 수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는 소식이다. 그는 “외국인 매도는 우리의 지분율을 올릴 수 있는 기회”라고도 했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론이다. 그는 외국인의 주식 매도가 언제 중단될지 족집게처럼 아는 모양이다. 증권회사 애널리스트라면 모르지만, 어떻게 청와대에서 이런 표현이 흘러나오는지 어리둥절하다. “리먼브러더스가 산업은행과의 협상에 합의했다면 부도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민유성 행장의 해명도 마찬가지다. 거꾸로 부실덩어리 리먼을 인수했다가 산업은행마저 동반 침몰하는 가능성은 없었는지 반문하고 싶다. 산업은행장은 나라 경제를 담보로 도박을 일삼는 자리가 아니다.

더 걱정스러운 대목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에게 경고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이다. “금융 불안이 이제 다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성급하다. 앞으로도 시장의 변동성은 있을 수 있다”는 한은 총재의 말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나마 지난 7개월간 한은 총재만큼 적절하게 대처한 당국자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지금은 객관적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온갖 문제를 덮어둔 채 “괜찮다. 안심하라”고 우긴다면 우리 사회의 수준을 얕보는 것이다. 이번 경제불안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어느 때보다 청와대·정부·한은이 공조해 정석대로 풀어야 한다. 더 이상 정책 당국 간의 혼선이 경제 혼란에 기름을 부어선 안 된다. 입을 잘못 놀리는 정책 당국자도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