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베르테르 효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세계 문학 사상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만큼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은 찾기 어렵다.

1774년 발표된 소설의 줄거리는 남의 약혼녀 로테를 사랑한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당시 25세이던 괴테 자신의 실연 체험에 절친한 친구의 자살을 접목해 썼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는 인습과 체제, 귀족 지배에 반항하는 젊은 지식인의 열정과 좌절이었다. 소설은 5개 국어로 출간돼 ‘베르테르 열기’라고 불리는 유행으로 유럽을 휩쓸었다. 남자들은 노란색 조끼와 바지, 파란 프록 코트, 갈색 부츠와 둥근 펠트 모자 등 베르테르 의상을 하고 다녔다. 여자들은 소매와 목 부분에 붉은색 줄이 들어간 흰색 로테 원피스를 입고 베르테르란 이름의 향수를 뿌렸다. 문제는 모방 자살 역시 젊은이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갔다는 점이다. 권총 자살한 젊은이의 책상 위에서도, 강물에 투신한 젊은이의 주머니 속에서도 이 소설이 발견됐다. 소설로 부와 명성을 움켜쥔 괴테도 “이 작은 책의 효과는 크다. 아주 괴물스럽기까지 하다”고 개탄했다.

그로부터 200년 후인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모방 자살에 ‘베르테르 효과’란 이름을 붙였다.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던 인물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는 47~68년 미국 유명인의 자살 사건을 조사한 결과 언론에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후 2개월간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몇 해 전 언론의 자살 보도에 관한 기준을 발표했다. 모방 자살,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를 막아보자는 취지다. “유명인의 자살은 될수록 작게 보도하라. 주검과 현장, 자살 수단의 사진을 싣지 마라. 복잡한 자살의 동기를 단순화하거나, 고통에 대처하는 선택이나 해결책인 것처럼 표현하지 마라.” 2004년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함께 만든 ‘언론의 자살 보도 권고 기준’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 중 연탄가스를 이용한 자살 사건이 3건이나 발생했다. 탤런트 안재환이 차량 안에 연탄불을 피워 자살한 것을 모방한 ‘베르테르 효과’로 보인다. 스스로 만든 자살 보도 기준을 가볍게 본 언론 탓은 아니었는지,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야지 싶다.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