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代理戰爭으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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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부고속철도 중앙역은 어디가 좋은가.
건설교통부.서울시가 5년째 다투고 있지만 결말이 쉽게 나지 않는다.이젠 양 부처도 지쳤는지 이번엔 산하 연구기관을 끌어들여 대리(代理)전쟁을 붙일 모양이다.
건교부는 당초 고속철도 기본계획을 세우면서 「서울역」을 중앙역으로 골라 외국 유명설계회사까지 동원해 서울역 주변 개발구상안까지 만들었다.이 계획은 그러나 처음부터 서울시 반대에 부닥쳤다.서울시는 「용산역」을 주장했고,건교부는 비용 .공기(工期)때문에 안된다며 서울역을 활용하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93.6).1년 후 또 문제가 되자 건교부는 「2001년 개통할 때는 서울역을,그 다음 2단계로 용산역을 개발하자」는 대안으로 한발 물러섰다(94.9).
그러나 건교부의 이같은 시간벌기 작전에도 서울시의 공세는 여전했다.간간이 용산개발계획을 발표하며 건교부에 「중앙역=용산역」의 공식화를 요구했다.서울역 시설보완을 위해 도시계획시설 결정을 요청하는 고속철도건설공단의 요구를 서울시는 계속 미뤘고,건교부도 할 수 없이 「중앙역을 어디에 둘지 검토하는 용역」을서울시와 공동발주하는데 일단 합의했다(95.12).
건교부.서울시는 똑같이 돈을 내서 「제3자」에게 재판을 받기로 한 것이다.그러나 정작 재판을 할 제3자를 고르기가 힘들었다.양 기관이 추천한 제3자는 「건교부는 국토개발연구원,서울시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으로 모두 산하연구원이었고 결국 타협은 평행선만 그었다.
수차례 회의 끝에 「두 연구원에 똑같이 돈을 나눠주고 공동연구를 시키자」는데 합의했지만 이 방법 또한 문제였다.이제부터 양 부처가 시키는대로 대리전쟁을 벌여야 할 두 연구원은 「간사를 누가 맡을지,연구진을 어떻게 구성할지,과제수행 방법을 어떻게 할지,연구기간을 얼마로 할지…」등을 전혀 타협하지 못하고 있다.아직 계약도 안된 연구를 놓고 연구원끼리 이처럼 신경전을벌일 정도라면 앞으로의 대리전쟁 결과는 안 봐도 뻔한 것 아닌가. 이들의 연구를 처음부터 「중재.검토」할 진정한 제3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경부고속철도에 관한 최종 의사결정은 원래 총리실 산하 「위원회」에서 하게 돼 있으니까 여기에 사계전문가로 「검토단」을 구성하면 무난할 것이다.이 검토단은 개발권에 얽힌 서울역.용산역의 문제를 샅샅이 밝혀야 하고,외국의 중앙역을 참고해 더 나은 입지가 있다면 선뜻 제안해야 한다.이미 물건너 간 2001년 개통에 얽매이지 말고 중앙역 하나는 좀 제대로,객관적으로,긴 안목으로 결정해야 한 다.
음성직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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