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입원한 20代 알콜중독자 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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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맑은 정신으로 내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이제내 인생에서 「술」이란 단어를 없애버리자.그러나 자신이 없다.
』 내가 처음 술을 마신 것은 83년 성적불량으로 부모님의 기대감을 저버리고 수도권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중학교의마지막 겨울방학때다.추운 겨울밤 친구와 함께 남의 집 대문 앞에 앉아 소주를 마셨다.반병을 채 마시기도 전에 취기가 오르며역겨워지기 시작했다.
이듬해 봄 학교를 중퇴하고 서울 소재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간혹 술을 마셨지만 소주 한병을 넘기는 일은 없었다.그러나 진학후 음악에 대한 적성을 살린다며 학교 밴드부에 가입한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방과후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연습뒤면 으레 술자리가 마련됐다.선후배관계가 엄했던우리학교 밴드부의 술자리는 일종의 「의무」였고 술에 차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2학년때는 소주 2병을 거뜬히 비우는 「술꾼」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두려움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그러면서 술자리가없을 경우 혼자 술을 사들고 집에서 마시는 횟수도 늘어났다.
26세가 되던 93년 본격적인 알콜중독증세가 시작됐다.잦은 음주와 사원간의 불화로 직장도 이미 두번이나 옮긴 뒤였다.손떨림이 심해지고 낯선 곳에서 잠을 깨기 일쑤였다.때론 마른 피로옷이 더럽혀졌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기 억이 나지 않았다. 친구들도 하나 둘씩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주사(酒邪)를참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친척들도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던중 마침내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술기운에 어머니의 얼굴을 때려 어머니가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샌드백을 한번 세게 후려쳤다는 느낌뿐이었다.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결혼도 하고 번듯한 직장도 다니고 싶지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술 마시는 일을 제외하곤….결국자발적으로 정신병원을 찾았다.2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 술 생각은 거의 안난다.그러나 사회로 돌아간다면 자신이 없다.술권하는사회속에서 술 못하는 병신으로 살 자 신은 아직 없다.
◇수기 제공자는 알콜중독증으로 지난달 19일 서울 K정신병원에 입원 치료중인 朴모(29.서울서대문구연희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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