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교수 = 정년보장’ 공식 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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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교수 승진은 자동으로 정년 보장’이라는 서울대의 오랜 규칙이 깨진다. 서울대는 승진심사위와 분리된 ‘정년 보장 심사위원회’를 최근 발족했다고 11일 밝혔다. 이에 따라 정교수 승진 대상 교수들은 의무적으로 정년심사위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공무원법과 서울대 규정에는 ‘정교수로 승진하면 정년을 보장받는다’고 돼 있다. 승진과 정년 심사가 법적으로 묶여 있다. 김명환 교무처장은 “미국·유럽에서는 승진과 정년 심사는 별개다. 보통 임용 후 4~5년 정도 지나면 테뉴어 심사를 받게 된다”며 “앞으로 서울대도 이런 국제 기준을 적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간 서울대는 임용 뒤 최대 20년까지 정년 심사를 유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대는 당장 법을 바꿀 수 없자 정년과 승진을 분리하는 작업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 4월, 서울대는 정년 보장 대상 39명 중 10명을 탈락시켰다. 본부 심사에서 단과대 승진안을 기각한 것은 서울대로서는 처음이었다. 이장무 총장은 “1학기 정년 심사는 워닝(warning·경고)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처장은 “1학기의 경고는 평가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보여준 메시지였다”고 설명했다.

정년심사위는 평가 기준을 ‘부교수 테뉴어’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부교수 승진과 함께 조기 정년을 보장받는 ‘부교수 테뉴어’는 탁월한 업적을 가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다. 정년 심사 자체가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정년심사위는 외부인 두 명을 심사위원으로 영입했다. 이 중 한 명은 현재 미국 명문대에 재직 중인 교수다. 서울대는 ‘다음 단계’도 검토하고 있다. 부교수 승진과 함께 의무적으로 예비 정년 심사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안이 실시되면, 임용 후 4년이 지나면 정년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탄력적인 교수 시장이 없는 국내에서 이런 개혁안은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교수 시장’은 유연하다. 가령 A급 대학에서 테뉴어를 받지 못했다면, 한 단계 낮춰 다른 대학으로 옮길 수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에서 교편을 잡았던 기초교육원 신의항 교수는 “예일대의 경우, 한 학교에서 조교-부교수-정교수를 모두 거치는 교수는 전체의 19%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대학에서 테뉴어를 받지 못하면, 사실상 교수로서의 생명이 끝난다. 받아 주는 대학이 없다. 뿌리깊은 연고주의 탓이다.

서울대 사회대는 이날 ‘교수 평가에 대한 대토론회’를 열었다. 사회대 교수 30여 명이 참석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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