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 시시각각

왕이 개미허리를 밝히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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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한 사람인 제나라 환공은 보라색 옷을 즐겨 입었다. 그러자 신하와 백성들이 앞다퉈 보라색 옷을 따라 입었다. 다른 색 옷감은 창고에 쌓여 좀이 슬었다. 또 다른 오패 중 하나인 초나라 장왕은 허리가 가는 여자를 좋아했다. 그러자 온 나라 여자들이 밥을 굶었다. 마을마다 아사한 원혼을 달래는 곡성이 넘쳐흘렀다.

권력자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일화다. 2600년 전 중국뿐 아니라 오늘날 이 땅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권력자가 무엇에 불만을 나타내기만 하면 금세 누군가가 그것을 헐뜯는다. 반대로 무엇에 관심을 보이면 즉각 찬사가 줄을 잇는다. 그것이 시공을 초월한 인간 세태다. 그래서 권력자는 사소한 말과 행동이라도 늘 삼가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 이 교훈을 가장 뼈저리게 느껴야 할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다. 불교계의 종교편향 분노의 표적이 되고 있는 우리 장로 대통령 말이다. 사실 좀 억울하기도 할 터다. 남에게 기독교를 믿으라 강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종교생활에 충실했을 뿐인데 말이다. 대통령은 측근에게조차 “교회에 나가라”고 권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 종교가 존중받으려면 먼저 남의 종교를 존중해야 한다는 게 신념이라는 거다.

남의 종교에 관대한 만큼 자신의 종교도 눈치 볼 게 없다. 지난 대선 때 “교회 일정은 자제하시는 게 좋겠다”는 참모들의 말에 대통령은 “내 신앙생활이니 왈가왈부 말라”고 못 박았다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의 새벽기도를 들으며 자란 대통령에게 기독교는 곧 어머니이자 지긋지긋한 가난을 성공으로 바꿔놓은 동력원(動力源)일 수 있다. 그런 대통령의 신실한 신앙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서울시장 시절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느니 “청계천은 하나님의 역사”라던 말들은 다소 지나친 감이 없잖아도, “장로가 대통령이 돼서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거나 “간구와 기도로 이 나라가 축복 넘치는 땅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대통령이 되고 난 뒤의 발언은 크게 도를 벗어난 것도 아니다. 모두 종교집회에서 한 말이니 더욱 그렇다.

문제는 옷을 따라 입고 밥을 굶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최고권력자가 독실한 신앙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니까 성은을 입어볼까 교회 주변을 기웃거리거나 다락방 성경의 먼지를 떠는 사이비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는 얘기다. 잘한 짓인 양 다른 종교에 공연한 해코지를 하는 기회주의적 행태가 고개를 쳐든다는 말이다.

만약 대통령이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면 미필적 고의는커녕 실수로라도 정부 교통정보에 사찰을 삭제하는 일이 생길 수 있었겠나. 50년 된 교회에 동영상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1600년 넘은 한국 불교의 최대 잔칫날 축전 하나 챙기는 걸 잊었겠나. 언감생심 치안총수가 기독교 행사 포스터에 늠름한 얼굴을 내밀고 수도의 교육수장이 근무시간에 대놓고 주 찬양할 수 있었겠나 이 말이다.

사태의 본질은 종교편향이 아니라 아첨이다. 권력 주변에는 늘 아첨꾼들이 꾀게 마련이지만 이번엔 그들의 알랑방귀에 종교색이 가미돼 더욱 소란하고 위험해진 것이다. 대통령이 불교계가 아니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하는 이유다. 가뜩이나 지역갈등, 좌우갈등에 멍든 이 땅에 치명적인 종교갈등을 보탤 위험 보균자인 아첨꾼들이 발호할 빌미를 준 데 대해 대통령은 잘못을 빌어야 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등에 업고 세력확장에 나서려는 몇몇 물량주의 교회보다 해로운 존재들이어서 그렇다.

제 환공과 초 장왕 두 사람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이지만 한 사람은 아첨꾼들 속에 파묻혀 굶어 죽었고 한 사람은 아첨꾼들을 내쳐 천수를 누렸다. 선택은 자명하다. 안된 얘기지만 권력자의 신앙생활이 제약받더라도 아첨꾼의 싹을 잘라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 자신을 위한 길이며 종교와 상관없이 버거운 삶을 사는 뭇 백성을 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