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73> WBC 두 영웅의 굳은 악수, 그 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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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 25면

2006년 3월 21일.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의 아침 햇살은 눈부셨다. 캘리포니아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는 노래의 날렵한 선율처럼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았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했던 야구 대표팀의 발걸음도 그 햇살처럼 경쾌했다. 축제의 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의 아침이었다. 세계 4강이라는 전리품은 햇살을 받아 더 빛났다.

세계 4강. 한 수 위라는 일본을 두 번이나 이겼고, 야구 종주국 미국을 그들의 안방에서 꺾었기에 한국은 최종 우승팀보다 더 주목받았다. 이제 파티는 끝났고 새로운 아침이 시작됐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의 박찬호는 짐을 꾸릴 필요가 없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온 동료들을 떠나보내는 처지였다. 도쿄-애너하임-샌디에이고로 이어지는 여정이 짜릿함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세계 4강이라는 목표를 이뤘다.

축제의 주인공이었지만 박찬호는 뭔가 아쉬워했다. 동료들과의 헤어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기회였다. 언제 이런 멤버가 다시 모여 야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우린 대단했다. 그러나 일본과의 준결승은 아쉽다. 긴장의 끈이 다소 풀린 것은 아니었나. 마지막 일본과의 경기는 왠지 이기지 못할 거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얻을 만큼 다 얻고도 미련이 남는다. 내 인생에 이런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까.”

복도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짐 꾸리는 소리로 웅성거렸다. 밝은 성격의 이병규가 환하게 웃으며 지나갔다. 창밖의 햇살을 한동안 지켜보던 박찬호는 이승엽의 방으로 전화를 했다. 이승엽은 이번 대회 최고의 타자였다. 한·일전 역전 홈런, 미국·멕시코전 선제 결승 홈런. 책임감 강한 그는 감기·몸살을 내색도 안 하고 홈런을 펑펑 때렸다. 그는 이제 일본으로 가야 했다.

이승엽은 박찬호가 내민 기념 배트에 사인을 했다. 그들은 WBC가 준 교훈과 아쉬움에 대해 얘기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지했다. 서로가 힘을 합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어 뿌듯하다고 했다. 미국 사람 앞에서, 일본 사람 앞에서 한국 야구의 위상을 한껏 높여 너무 기쁘다고 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일본전이 미련으로 남았다고 했다. 박찬호도, 이승엽도 그 마지막 한 고비가 미완성으로 남았다고 했다. 그들은 굳은 악수를 나눴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2년이 지나고 베이징 올림픽에 세계 야구가 다시 모였다. WBC의 리더 이종범·박찬호는 없었지만 이승엽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2년 전의 아쉬움을 잊지 않았다. 대표팀 모자를 처음 받아 들고 그는 당당하게 ‘금메달’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9전 전승으로 우승하겠다”고 말했다. 분위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한번 넘어 본 산의 높이에 감탄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그에게, 이번 올림픽 대표팀에 있었다.

준결승 상대가 일본이었다는 건 WBC와 같았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그리고 결승전에 임하는 태도 역시 달랐다. 주장 진갑용은 “우리 인생에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다. 딱 한 경기만 더 잘해 보자”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그는 결승전 마지막 순간 아픈 허벅지를 끌고 나와 안방을 지켰다.

발전의 계단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없다. 그 계단은 두 영웅이 나눴던 악수처럼 아쉬움-도전-정복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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