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북 핵시설 복구” 미국 “복구는 아닌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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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별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북한의 영변 핵시설 복구 움직임을 놓고 한국과 미국의 설명이 다르다. 외교통상부는 3일 저녁 늦게 “북한이 영변 핵시설 복구 조치를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몇 시간 후 미 국무부의 숀 매코맥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저장소에 보관했던 일부 장비를 옮기고 있다”면서도 복구 여부에 대해선 “자세한 정보가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질문이 계속되자 결국 매코맥 대변인은 “영변 핵시설을 재건(reconstruct)하거나 재조립(reintegrate)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은 분명한 입장을 밝힌 반면 미국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 것이다.

6자회담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도 한·미는 표현 수위가 달랐다. 매코맥 대변인은 “북한이 앞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한 반면 외교부 당국자는 4일 간담회에서 “6자회담 과정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측은 ‘진전이 없다’이지만 한국 정부는 ‘뒤로 가고 있다’였다. 한·미 간 시각차로 비춰질 상황이 벌어지자 외교부는 차단에 나섰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4일 브리핑에서 “한·미는 여러 차례 상황을 협의하고 있고 인식 차이도 없다”고 강조했다. 고위 당국자도 “3일 외교부가 보도자료를 내기 전 미측과 협의하고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부의 ‘핵시설 복구 착수 확인’ 발표는 미측의 확인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태도가 조심스럽자 일각에선 ‘대선이라는 미국 정치 상황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한·미는 그러나 향후 ‘차분한 대응’에는 보조를 맞췄다. 유 장관은 “과잉 대응은 상황 관리에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6자회담 과정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고 말했다.

◆시점 골라 움직인 북한=북한은 영변 핵시설 복구에 착수하며 이번에도 미국의 정치 일정과 시기를 맞췄다. ‘복구 재개’를 미측에 통보하고 실제 움직임에 들어간 2일과 3일은 미 공화당의 전당대회 기간이었다. ‘핵시설 불능화 중단’을 공개한 지난달 26일은 미 민주당의 전당대회 개시일이었다. 정치적 타격을 최대화하기 위해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는 시기를 조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채병건 기자 ,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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