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복구 노림수 알려면 IAEA직원 추방 여부 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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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중단했던 북한이 결국 핵시설 ‘원상복구’를 강행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로 어렵사리 진행됐던 6자회담과 북핵 비핵화는 다시 난관에 직면하게 됐다.

지난달 26일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불능화 중단을 공개하며 군부의 요구에 따라 원상복구 조치에 나설 수 있음을 밝힌 직후 한·미 당국은 영변 핵시설의 동향을 예의 주시했다. 북한은 그동안 핵 협상을 진행하며 고비마다 강경 전술을 구사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원상복구 착수 조치도 북한으로선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행동에 들어간 것이라는 정부 내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 정보당국은 한·미 간 정보 공조를 통해 이 같은 동향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이날 “영변에서 북한의 핵시설 복구 조짐이 있다”며 “북한이 미국의 공화당 전당대회 기간에 맞춰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영변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 등이 상주하는 데다 미국 측 인공위성을 통한 동향 감시가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이상 행동’은 실시간으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구체적으로 핵시설 복구 조치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불능화 과정을 통해 해체했던 일부 장비를 다시 핵시설에 가져다 붙이는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북한의 원상복구 강행 작업이 ‘일시적 압박용’인지 아니면 진짜 ‘핵시설 복구 강행’인지를 신중하게 분석하고 있다. 일단 정부 내부에선 대미 압박용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다. 핵시설 복구를 제대로 진행하려 한다면 현장에 상주하고 있는 IAEA 직원 등을 추방해 감시의 눈을 없애는 절차가 우선인데 이들이 남아 있다는 게 그 근거다. IAEA 직원들에게 자신들의 행동을 의도적으로 보여줘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시위성 행동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부 일각과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른 얘기도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발표하며 현 부시 행정부가 양보하지 않을 경우 차기 행정부로 북핵 문제를 넘기겠다는 결심을 하고 불능화 중단에 나섰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경우 앞으로 영변 핵시설을 현 상태대로 그대로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차기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미국의 대선 기간 중 북한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틈을 이용해 영변 핵시설을 다시 건드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이 보여줄 다음 카드는 분명한 핵시설 복구 시도에 이어 IAEA 직원들의 추방이 될 수도 있다. 대치 상황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남북 관계에도 영변 핵시설의 원상복구 개시는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를 대북 정책의 기조를 삼고 있는 현 정부로서는 대북 식량 지원이나 각종 남북 관계 개선 조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데 명분이 줄어들게 됐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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