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47> 부처와 예수, 그 사이의 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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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성면 ‘금봉2리’는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이곳은 ‘기독교 마을’로 불립니다. 가난했던 마을에 한 목사님이 들어와 부자 마을이 됐습니다. 직접 사과 농사 짓는 법을 가르치며 전도를 했거든요. 그래서 마을 사람 상당수가 크리스천이 됐습니다.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매달 돈을 모아서 목사님 월급을 드리고 있습니다.

2년 전, 그 마을에서 ‘설왕설래’가 오갔습니다. 마을 뒷산 언덕에 불교 암자가 들어선다는 얘기가 들린 거죠. ‘갑·론·을·박’이 벌어졌죠. “크리스천 마을에 무슨 암자야”“당장 길을 막아야지”란 목소리도 나왔죠. 그때 마을 이장이 한마디 했습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부처님도 하나님이 만드신 건데, 뭘.” 그 ‘한 마디’로 마을 의견은 정리가 됐습니다. 그리고 마을 뒷산에 암자가 들어섰죠.

그 암자가 바로 ‘금봉암’입니다.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으로 꼽히는 고우(古愚·71·조계종 원로의원) 스님이 살고 있죠. 각화사 태백선원장도 지냈던 고우 스님은 아랫사람의 시봉을 받지 않고 직접 밥을 하며 십수 년 동안 지냈죠. 그걸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이 작은 암자를 지어드린 겁니다. 요즘은 마을 사람들도 종종 암자를 찾습니다. 스님이 건네는 차도 한 잔 마시고, 이런저런 세상 얘기도 나누죠. 마을사람들은 ‘예수님과 성경’얘기도 종종 합니다. 그럼 스님은 말없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죠. 고우 스님은 “사과농사 짓는 법을 직접 가르친 목사님이 대단하시다. 그게 바로 살아있는 포교다”라고 말합니다.

암자를 짓던 해 봄에는 스님이 100만원 정도 경비를 대 마을에서 ‘노인 위로 잔치’를 열었습니다. 사과 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사과 박스를 들고 금봉암을 찾아오죠. 마을사람도 스님을 좋아하고, 스님도 마을 사람을 좋아합니다. 동갑인 마을 장로님 한 분은 “영감, 나하고 나이가 똑같네”라며 아예 스님과 말을 트고 지냅니다.

금봉암에 가려면 마을 앞길을 꼭 지나야 하죠. 외지에서 고우 스님을 찾아오는 차량은 무척 많습니다. ‘선지식’을 찾아 먼길을 마다 않고 달려오는 사람들이죠. 그렇게 마을 앞으로 차들이 ‘쌩, 쌩’ 지나갑니다. 그때마다 마을사람들은 한마디씩 던지죠. “늙수그레한 스님 한 분 사시는데, 웬 차들이 이렇게 많이 다니지?” 그들에게 스님은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이야기’인가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참으로 ‘큰 이야기’죠. ‘현문우답’은 거기서 예수의 시선, 부처의 시선을 ‘슬쩍’ 봅니다. 이 시선은 모든 사람이 닿아야 하는 마음이죠. 그런데 현실에선 그렇질 않습니다.

역사 속의 숱한 국가와 지구상의 숱한 민족이 여기에 닿질 못했죠. 그래서 서로에게 총과 칼을 겨누고, 죽이고 죽으며, 증오를 쌓아갔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산골 마을의 크리스천들과 노스님이 보여준 ‘악수의 풍경’에 ‘현문우답’은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왜일까요.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계명은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다”라고 했습니다. 산골 마을의 크리스천들은 그걸 몸소 보여주네요.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서 ‘예수의 마음’이 언뜻언뜻 비치네요.

‘현문우답’은 1일 오랜만에 고우 스님께 전화를 드렸죠. 스님은 불쑥 ‘오바마’얘길 꺼내더군요. “오바마도 기독교인이죠. 그는 독일을 방문했을 때 부시 대통령의 ‘이분법적 사고’를 철저하게 비판하더군요. 민주당과 공화당의 갈등을 오히려 부추긴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오바마는 국가간 담도, 종교간 담도, 인종간 담도 허물어야 한다고 했죠. 저는 거기서 ‘진정한 기독교인’을 봤습니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죠. ‘원래 예수와 부처 사이에는 담이 없구나. 내가 부처와 멀어지고, 내가 예수와 멀어지기에 담이 생길 뿐이구나.’ 그게 누가 만든 ‘담’일까요. 그렇습니다. ‘내가 만든 담’이죠. ‘종교 편향’문제로 우리 사회에 긴장감이 돕니다. 부처도 만든 적이 없고, 예수도 만든 적이 없는 ‘담’을 사이에 두고 말입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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