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곡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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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류가 불을 지펴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 즉 취사(炊事)의 매력을 알고 난 뒤로 아궁이와 굴뚝은 사람의 생활과 매우 밀접한 장치였을 것이다. 부뚜막 신(神)이 생겨나고 굴뚝으로 얘기되는 민담과 고사성어도 많이 나왔다.

과거의 중국에 내려져 오는 얘기다. 집에 불이 자주 나는 사람이 있었다. 굴뚝을 똑바로 세우고 아궁이 옆에 땔감을 쌓아놓은 집이다. 그 앞을 지나가던 사람이 훈수를 했다. “굴뚝을 다시 구부려 짓고, 섶나무를 아궁이로부터 떨어진 곳에 두라”는 내용이다.

반듯하게 지은 굴뚝은 불기운을 왕성하게 한다. 그 거센 불길이 옆에 쌓아둔 섶에 옮겨붙어 화재로 이어질 것이라는 직관적인 통찰이다. 주인은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다가 거듭 화마를 불러들인다. 다행히 이웃의 도움으로 불을 끈다. 가축을 잡아 도와준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벌인다. 불을 끄느라 이마와 머리카락을 태운 이웃은 상석, 나머지 사람들은 논공행상에 따라 다음 자리를 준다.

그때 누군가 일깨운다. “처음에 굴뚝을 고치라고 얘기해 준 사람은 왜 대접을 안 하느냐”는 물음. 주인은 그제서야 곰곰이 따져본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다면 불길로 집을 태우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을…. 굴뚝을 구부리고 섶을 옮기라는 뜻의 ‘곡돌사신(曲突徙薪)’의 고사다.『한서(漢書)』에 나온다.

이 고사는 흔히 화(禍)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로 해석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여러 교훈이 담겨 있다. 뻔히 보이는 길을 알아채지 못하는 자의 어리석음, 본질은 놓치고 곁가지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의 미욱함 등이다.

청와대가 꼭 그렇다. 요즘엔 종교적 편향성을 그대로 드러내 불교계를 휘저어 놓았다.

촛불에서도 그랬고 불심을 자극한 사안에서도 그랬다. 청와대는 법과 규범의 강고함을 무시했다. 불법시위에 어찌 할줄 모르고 궁색함만 늘어놓다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공직자로서 해서는 안될 종교적 편향을 여보란 듯이 펼쳤다. 그 뒤로 이어진 성난 불심에는 제때 사과를 하지 않아 시의성도 놓쳤다. 게다가 촛불 끄느라 머리카락 태워먹은 경찰청장을 감싸느라 공직자로서 종교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한 그 잘못에는 눈을 감았다.

굴뚝을 구부리고 섶을 옮기면 될 일인데 눈치와 요량이 없다. 뻔히 보이는 길도 알아채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정부다. 인기가 오른다면 그게 참 이상할 일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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