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무대>연극 "광인들의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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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광기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가.
69년 극단 가교(대표 김진태)에 의해 초연된 뒤 27년만에초연 연출자에 의해 다시 무대에 오른 『광인들의 축제』(이근삼작.이승규 연출)가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광인들의 축제』는 초연 당시 군사독재를 풍자한 작품이란 말이 돌아 작가와 극단측이 고역을 치렀던 작품.그동안 급격한 변화를 겪어온 사회환경이 작품이 주는 주제와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으나 힘이 넘치는 모습 으로 다시 모인 「광인」들은 작품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동굴밖 멀리서 포성이 들려오고 두 남자가 동굴 안으로 뛰어들어오면서 연극은 시작된다.두 사내는 대학 동기동창인 연극배우 이화령과 교수 이매명.비어 있는 줄 알았던 동굴엔 이미 둥지를틀고 있는 신세계 정신병원 환자들이 발견되면서 동굴은 공포의 광기로 휩싸인다.
항상 돈계산만 하는 상술.늘 상상의 칼로 상상살인을 일삼는 삭도.성적 욕구에 불타는 변태성욕자 성파.운동권 아들을 잃은 광신도 예씨.상상의 아이를 안고 있는 마리아.지배욕에 불타는 군인출신 감독관.이들을 병원에서 데리고 피난한 신 원장.
이들은 배우 이화령의 제안에 따라 「연극놀이」를 시작하게 된다.광인들의 놀음으로 그칠 줄 알았던 연극놀이에서 정작 광기의칼날을 번득이는 사람은 이화령과 이매명이란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다. 이화령은 연출자로 참여한 연극에 빠져들면서 내면에 잠재된 사회적 피해의식을 광기의 지배욕으로 표출한다.
반면 연극놀이의 재판은 위선의 장막에 감춰진 이매명의 비행적삶을 폭로하고 만다.광기와 비(非)광기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배운 자가 칼을 더 쓴다.』『정신병 환자보다 미친 지도자가 위험하다.』『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계속 움직이게해야 한다.』 무대 곳곳에서 광인들의 입을 빌려 터져나오는 대사들은 『실의와 좌절,그리고 분통이 뒤얽혔던 30년전에 쓰여졌다』는 작가의 변(辯)을 음미하게 한다.극중극등 철저한 놀이형식을 통해 신념과 상식의 위기시대를 조명한 것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27년만에 이 작품을 다시 연출한 이승규(전 가교 대표)씨는『이번 무대에는 각 광인들에게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인물 성격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라며 『광인들은 현대 사회의 광기와 무질서,폭력의 혼란상은 물론 이에 희생되는 사람들 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12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오후4시30분.7시30분(월 쉼). (02)741-6705.
글=이은주.사진=김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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