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72> 한˙일 운명의 8회 말, 그 홈런의 재구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7호 24면

그때 호시노의 머릿속엔 앞선 6회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왼손 나루세가 등판해 이용규-김현수-이승엽 왼쪽 세 타자를 상대했던 6회 말. 투구수 9개로 아웃카운트 3개를 잡아낸 그 장면. 나루세가 이승엽을 상대로 공 4개 만에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던 그 부분에서 왼손투수의 유혹을 참지 않았다. 앞선 한·일전에서 교체 타이밍이 늦었다고 비난을 받은 데다, 7회 후지카와가 동점을 내줘 그 유혹은 더 달콤했다. 명분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이와세로 향했다.

이와세는 ‘호시노의 황태자’다. 주니치 드래건스가 이와세 셋업-선동열 마무리로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때 호시노는 감독이었다. 그를 너무 잘 알고, 믿는다. 상대의 왼손타자 세 명이 줄줄이 나오는 8회 말은 이와세 타임이다. 이번 대표팀을 꾸릴 때 오른손 가와카미, 왼손 이와세, 클린업 이나바의 ‘주니치 삼총사’는 호시노가 가장 믿는 선수들이었다. 자, 이제 공은 이와세의 손에 있다. 승부다.

첫 상대 이용규에게 안타를 맞았다. 호시노는 직접 마운드로 향했다. 이와세-야노 배터리를 모아 분위기를 바꿨다. 이와세는 김현수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이제 이승엽. 김현수가 번트라도 했더라면 1루가 비었을 거다. 그래도 피해갈 생각은 없었겠지만…. 이승엽이라면 이와세가 충분히 해결해 줄 것이다. 올림픽 내내 제대로 된 타구를 만들어내지 못한 그다.

이와세의 초구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이승엽의 배트가 닿지 않는 곳이다. 6회 나루세도 초구를 그쪽에 던졌다. 그때 헛스윙을 했던 이승엽은 이번엔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번 타석의 승부가 바깥쪽에서 시작해 바깥쪽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은 이승엽도 알고, 이와세도 알고 있었다. 호시노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2구째가 이와세의 손끝을 떠났다. 또 한번 바깥쪽이다. 이번엔 파울. 눈에 띄는 점은 이승엽의 타격자세다. 오른발이 홈플레이트 쪽으로 ‘움찔’하고 파고드는 것이다. 바깥쪽 공을 공략하기 위한 이승엽의 노림수다. 덕분에 이제까지 이승엽의 타구와는 달리 파울이지만 타이밍이 맞았다.

2-0의 유리한 카운트를 잡은 이와세가 땀을 한번 닦는다. 절대 유리한 상황. 3구째 또 한번 바깥쪽으로 향한다. 이승엽은 골라낸다. 볼이다. 이승엽의 시선을 바깥쪽에 고정시켜 놓는다는 건 다음에 몸쪽으로 가도 이승엽의 허를 찌를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 포수 야노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4구째. 이와세는 우직하게 바깥쪽을 택한다. 이승엽의 방망이가 나온다. 파울. 느낌은 조금 다르다. 이승엽의 타이밍이 이번에도 맞았다는 점이다. 다만 파울 타구의 방향이 홈플레이트 뒤쪽이다.

야노가 이와세에게 볼을 넘겨주면서 배터리의 판단이 바뀐다. 이승엽이 바깥쪽을 노리고 있다는 확신에서 몸쪽을 택한다. 4개의 바깥쪽 공을 본 이승엽의 시선이 몸쪽 꽉 차는 공에 제대로 대처하긴 어렵다. 이와세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인 교환이 끝났다. 투구 동작이 시작되면서 야노가 이승엽의 몸쪽으로 옮겨 앉는다. 그리고 미트를 내밀어 이와세의 타깃을 만들어준다. 공이 야노의 미트로 향하는가 싶더니 궤적이 변한다. 야노의 미트가 한가운데 쪽으로 살짝 움직인다. 그때였다. 홈플레이트 언저리에 이른 공이 엄청난 스피드의 반발. 이승엽이 휘두른 방망이의 우렁찬 저항에 부딪친 것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