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습관적 망언과 월드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종군위안부는 상(商)행위에 참가한 사람들이다.강제는 없었다.당시 매춘은 금지되지 않았다.』 일본 법무상.국토청장관을 지낸 자민당의 오쿠노 세이스케(奧野誠亮.83)의원이란 사람이 하는 말이 이처럼 어이 없다.
지난 88년 『중.일 전쟁때 일본의 침략의도는 없었다』고 폭언,국토청장관에서 해임됐던 그가 4일 「밝은 일본 의원연맹」 결성 총회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망언(妄言)이다.
그것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한.일간 우호를 다져보자는 분위기가 잡혀가는 가운데 튀어 나왔다.
그는 이번 망언이 문제가 되자 『나는 「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고,틀린 말도 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한술 더 떠 그는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고 이런 말 정도로 소동이 나는 한 월드컵 공동개최는 필요없다』고도 했다.
그런 오쿠노는 일본안에서도 골치아파하는 이른바 「확신범(犯)」이다.오쿠노만이 아니라 「밝은…」의 부회장을 맡은 에토 다카미(江藤隆美)전총무청 장관도 지난해말 『일본은 식민지 시절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고 했던 「습관적 망언꾼」이 다.
일본 정계에서도 이들의 잇따른 망언을 우려하는 자성(自省)의소리가 높다.
『난폭한 발언이다.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하나씩 신뢰를 쌓아나가려는 노력을 무(無)로 돌리는 것이다』『전후(戰後)교육을 받았던 의원이 다수파가 되고 있는 가운데 터져나온 노년층의 소수 의견이다』등등….
그러나 문제는 오쿠노가 일본의 「잘못된 역사교육」과 「사죄 외교」를 바로 잡겠다고 결성한 「밝은…」에 자민당 의원이 1백16명이나 가입했다는 사실이다.
독일은 재작년에 「나치의 전범(戰犯)사실을 부인하거나 찬양하는 경우 실형(實刑)에 처한다」는 법률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은 각료가 망언하더라도 해임되면 그만이고,다른 개인의 망언은 「사견(私見)」일 뿐이어서 망언의 고리가 끊어질 기미가 없다.
이런 일본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희망하고있다. 일본 외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
일본이 주변국의 신뢰를 얻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면 우선 과거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망언을 일삼는 오쿠노같은 확신범을 「처벌」하는 「정화법(淨化法)」부터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철호 도쿄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