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제부터다>5.세계화에 걸맞는 행정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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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무쇠도 녹는다.』 91~92년에 걸쳐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겸직한 바 있는 최창신 문화체육부차관보가 축구협회를 떠나며 남긴 말이다.재임 당시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축구 발전을 위해소신껏 행정을 폈다』는 호평을 받았던 그지만 역시 떠날 때는 아쉬 움이 컸던 모양이다.대한축구협회의 행정 난맥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2002년 월드컵 한국유치위는 일본유치위와의 유치전에서 결코뒤지지 않는 싸움을 펼쳤다.관료행정에 관한한 세계 최고 수준을자랑한다는 일본유치위와 한바탕 유치전쟁을 치른 이들은 모두 공무원이다.그것도 총무처.외무부등 정부 각 부처 에서 엄선된 인재 50여명으로 구성됐다.초창기 삼성.현대에서 파견됐던 유치위직원들도 「국제통」「협상통」으로 불리던 엘리트 집단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 축구 동량의 산실이라 할 대한축구협회나 프로축구연맹의 현실은 어떤가.정책의 일관성이 없는 편의주의,주먹구구식 행정은 현재 이들 단체가 놓여있는 현주소를 극명하게 말해주는 대목일 성싶다.그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인력」부족과 「전문성」 결여를 들 수 있다.축구협회 직원은 20명,프로축구연맹은 7명이다.9개 프로구단의 직원도 4명에서 15명 정도로 모두가 턱없이 부족하다.기본적인 업무 처리에도 허덕이는 실정이다.
한국 프로축구사상 첫 리그3연패를 이룬 천안일화는 프런트가 고작 4명으로 『모두가 국장급』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
매끄럽지 못한 외국어 구사도 행정수행의 장애요인으로 지적되며전산화는 거의 사각지대다.
둘째는 구조적인 문제다.기본적으로 소신행정이 결여돼있다.축구협회의 의사결정은 이사회에서 한다.그러나 이사직은 명예직이므로전혀 책임을 지는 법이 없다.사단법인인 탓이다.따라서 모든 행정 처리는 전적으로 협회나 연맹 사무국 직원들이 한다.그럼에도이들에게는 권한이 없다.때문에 무사안일주의가 일상화돼 있다.효율성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반면 외국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프로스포츠계는 으레 「커미셔너」제도가 있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그러나 잘못하면 마땅히 물러 나는 게 관례다.
셋째,마케팅 마인드가 부족하다.축구는 이제 비즈니스다.그러나비즈니스의 최전방에선 각 프로구단과 프로연맹은 축구협회 산하기관으로 묶여있어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독일은 프로구단의 적자가 계속될 경우 축구협회가 전권을 행사해 적 자구단의 팀보유 라이선스를 빼앗는다.팀성적이 부진한 구단이 스타플레이어를 스카우트 시장에 내다파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넷째,계획성이 부족하다.프로축구연맹은 매년 경기일정.행사일정을 잡는데 급급한 실정이다.그나마 최근 프로구단 사무국 장회의에서 장기계획을 수립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신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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