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新 YS는 못말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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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제수지가 급속히 나빠지니까 대통령이 대노(大怒)했다는 보도가 있었다.경상수지 적자가 올들어 넉달동안에 이미 연말 억제선을 넘어 섰으니 화가 안 날 수 없을 것이다.이대로 가면 올 연말에는 1백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적자를 볼지도 모르니 무슨대책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닌가,아마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한 것같다. 그러나 청와대에 불려갔다 온 경제팀장 나웅배(羅雄培)부총리는 국제수지 방어대책은 단기적.대증적(對症的)이 아닌 중.
장기적 안목에서 수립될 것이라고 말했다.당장 무슨 일이라도 낼것 같은 분위기에서 어떻게 원론적인 처방을 쓰자는 건 의가 수용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오랜만에 경제논리가 정치논리를 수긍(首肯)시킨 것일까.그래서 이렇게 짐작해 볼 수도 있다.
『羅부총리,어서 오시오.왜 경제사정이 이렇게 곤두박질치는 겁니까.2020년이면 우리나라가 G7에 진입한다는 희망찬 소식을전한게 바로 엊그제 아닙니까.』 『주요 수출상품의 국제시세가 떨어지니까 들어오는 돈은 적고,수입 증가세가 가파르니까 나가는돈은 많습니다.적자를 안 볼 수 있습니까.또 소득이 늘었다고 해외에 나가 돈을 펑펑 써대니 적자는 더 커집니다.거기다 1.
4분기 성장률이 7%대를 기록한 것으로 봐 만약 앞으로 성장까지 위축되면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에 휩싸이게 되는 거지요.』 『어떻게든 성장은 유지해야 합니다.추락하는 것은 날개도없다잖습니까.성장을 부추기기 위해 건축경기를 활성화시키는 것이어떨까요.집을 많이 짓게 합시다.건축경기는 전후방 파급효과가 제일 큰 분야 아닙니까.집없는 사람에게도 좋고요.』 (아니 대통령의 경제 실력이 언제 이렇게 늘었나.바짝 정신차려야 겠는걸.) 대통령의 말이 이어진다.
『내가 언젠가 천재 기사(棋士)이창호(李昌鎬)군을 불러 바둑을 두었습니다.당연히 나의 처절한 패배였지요.집없는 설움을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장덕균 저 「YS는 못말려」1백54쪽) 『아 네,그러셨군요.그래서 이번 대책은 우리 경제를 저(低)비용 구조로 가져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면 합니다.임금상승 폭을 낮추고,금리를 떨어뜨리고,땅값.물류비용을 안정시킴으로써 근본적으로 수출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지요.한 나라의 국제수지 곡선을 긴 눈으로 보면 오르락 내리락이 있습니다.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나 할까요.』 그 순간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 졌다.
(아차 실수했구나.대통령 임기는 2년도 안 남았는데 국제수지하향곡선은 2000년까지 계속될 전망 아닌가.지금 대통령이 언제 국제수지 흑자(黑字)를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대통령이 격앙된 음성으로 말했다.
『아니 문민정부가 들어선지가 언젠데 부총리는 아직까지 군사용어를 쓰는거요.게다가 계급차별은 왜 하는거요.상사만 사람이오.
중사(中士)도 있잖소(같은 책 2백18쪽).여러말 말고 경제는부총리가 책임지고 꾸려 나가시오.당신의 머리를 빌립시다.』 「대노」의 전말(顚末)이 이렇다면 오랜만에 YS는 탁월한 선택을한 것이다.경제 난국의 극복은 경제 전문가에게 맡겨 경제논리대로 풀어나가는 길이 최선일 것이기 때문이다.경제문제는 내가 꼬박꼬박 챙기겠다는 식보다 훨씬 모양도 좋다.
어차피 「당신이 책임지고」의 그 책임이라는 말 속에는 깊은 뜻이 담기지 않았겠는가.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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