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종교 분쟁’ 불씨 잡아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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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02면

불교계가 27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를 연다. 특히 조계종의 최고 의결기관인 중앙종회는 “기독교 장로 이명박 정권의 노골적인 종교 차별과 기만 행위는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범위를 넘고 말았다”며 ‘50만 명 동원령’을 내렸다.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은 ‘신라 시대 이차돈의 순교’까지 거론했다. 비장한 분위기다.

불교계가 대정부 투쟁에 나서며 내건 가장 큰 이유는 ‘종교 차별’이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오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장로 대통령’의 등장으로 긴장하던 불교계에 ‘오해’ 살 일이 거듭돼 온 건 사실이다. 정부 전자지도에서 교회·성당은 상세하게 표기하면서 사찰을 빠뜨린 것이 문제로 불거졌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전국경찰복음화 대성회’라는 종교집회의 포스터에 등장한 데 이어 조계사를 빠져나가던 지관 스님의 차량이 경찰에 검문검색을 당하자 불교계의 분노가 폭발했다. 청와대와 정부의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의 자세는 완강하다.

헌법 제20조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근대로 접어드는 여명기, 종교 전쟁으로 숱한 생명이 희생됐던 유럽의 전철을 밟지 말자는 정신이다. 종교 분쟁은 대부분 권력이나 정치 세력이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서 시작된다. 일단 종교가 정치화하면 종교 간 갈등은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이성이나 논리로 풀기 힘든 영역인 신앙과 신앙의 대결이 되기 때문이다.

그 극명한 사례는 중동의 화약고, 레바논에서 볼 수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 레바논은 다양한 종파와 민족이 비교적 평화롭게 지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전장이 되면서 기독교도-이슬람교도 간 유혈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여러 종교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세계에서 흔치 않은 국가로 꼽힌다. 과거에도 정권과 종교 사이에 마찰이 없지 않았지만 이번처럼 종교인이 거리로 나선 적은 없었다. 종교학계 원로인 정진홍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20일 ‘건국 60주년 연속 강연’에서 “다행히 다른 나라보다 종교적 갈등이 심하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종교 간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 역사가 진전하는 과정에서 종교가 발목을 잡지 않을까 굉장히 걱정된다”는 지적이다.

지금이라도 국정 최고 책임자인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헌법 제20조의 정신에 따라 ‘기독교 장로직’보다 ‘대한민국 대통령직’이 우선함을 다짐해야 한다. 그래야 ‘각하의 신앙심’을 겨냥한 충성 경쟁과 괜한 오해의 소지를 없앨 수 있다. 책임질 사람에게는 책임을 묻는 등 성난 불심(佛心)을 어루만질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공직자 역시 자신의 종교와 공무를 분명하게 가릴 줄 아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영·호남의 ‘지역 감정’과 보수-진보의 ‘이념 감정’으로 갈라진 나라에 다시 ‘종교 감정’까지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불교계도 촛불집회 구속자 석방, 수배 해제 같은 정치적 요구는 거둬들이고, 대승적 견지에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을 이끌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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