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아이템] 내 손 안의 컬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퍼플 컬러의 모토로라 ‘페블’ 폰.

요즘 통장정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게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많은 돈을 지출하면서도 손에 잡히는 것은 얼마 없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대신 제 손에는 잠잘 때를 빼고는(심지어 가끔 수면시간에도!) 항상 휴대전화가 있습니다. 제 생애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한 전자제품은 없습니다. 자주 쓰면서도 질릴 틈 없이 쓰고 또 써야 했던 제품도 없습니다. 휴대전화는 이제 어떤 것보다도 없으면 아쉬운 아이템이 분명합니다. 단순한 전자제품 그 이상의 존재가 된 거지요. 이것만 있으면 길도 찾고 음식점에서 할인까지 받을 수 있는데 어떻게 ‘단순한 전자제품일 뿐’이라고 무시하겠습니까.

저도 한때는 ‘전자제품은 무조건 기능 좋고 튼튼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주변 사람들이 성격·캐릭터·라이프스타일까지 똑같이 닮은 전자제품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요. 그래서 요즘은 사기 직전까지 ‘이 제품이 나에게 얼마나 어울리는가’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닌가 봅니다. 믿기 힘들지만 ‘헬로 키티’ 같은 핑크색 전자제품들은 나오자마자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돌 정도로 인기랍니다. 그래서인지 눈치 빠른 전자제품 디자이너들은 다가올 패션 트렌드 자료들을 빼놓지 않고 챙겨봅니다.

많은 패션 관계자가 올가을·겨울의 주요 유행 컬러로 퍼플(자줏빛 보라)을 빼놓지 않습니다. 올봄부터 계속해서 사랑을 받았던 비비드 컬러 데님들은 가을·겨울 분위기를 타고 퍼플과 같이 차분한 분위기로 연결될 것 같습니다. 벌써 국내 모 데님브랜드에서는 이번 가을·겨울을 겨냥해 퍼플 컬러를 중심으로 새로운 라인을 선보이고 있지요.

이런 정보들이 눈과 귀로 속속 들어오고 있는 가운데 모토로라에서 신비한 느낌으로 가득한 퍼플 컬러의 ‘페블(PEBL)’이라는 제품을 선보였더군요. 독특한 컬러는 물론 반들반들한 조약돌 같은 외형은 손에 쥐었을 때 기분 좋은 느낌을 줍니다. 왠지 이번 겨울의 패션 아이템들과 잘 어울릴 것 같아, 새로운 자판과 기능을 익혀야 하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함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직까지 블랙이나 실버 컬러의 전자제품들이 눈에 익숙하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컬러의 전자제품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인에 투자하는 기업이 매년 눈부시게 성장하는 것을 보면 디자인의 중요성은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보기 좋은 것은 언제나 사랑받게 마련이죠.

하상백(패션 디자이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