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한국경제 자유도는 몇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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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의 한 연구기관에서 세계 82개국을 대상으로 정치와 경제가 얼마나 자유스러운가를 조사해봤더니 95년도의 경우 한국은 정치적으로는 자유지만 경제적으로는 「대체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다.칠레.에스토니아 .남아공보다도 낮은 수준인 모양이다.
그 기관에서 자유도를 판단하는데 사용한 항목을 정확히 알 수없고,또 「자유롭다」는 정도가 점수기준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즐겨 사용하는 세계 몇등 기준인지 알수는 없지만,몇가지 시사하는 바는 있다.
첫째,우리나라를 정치적으로 자유스런 나라로 분류한 것을 두고야당들은 반발하겠지만 그나마 경제적으로는 정치적 상황보다도 덜자유스럽다고 지적한 점이 주목을 끈다.
아마도 야당들은 무슨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대행동이라도 취하지만,경제인들은 행동은 고사하고 발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또 괘씸죄라는 게 원체 막중한 까닭에 사회적 이슈가 된 상황이면 아무리 억울한 사정이 있어도 변명 한번 제대로 못하고 정부 조사관의 어거지 실적에 보탬을 줘야 하는 사정 때문일까? 그리고 수없이 많은 「협조사항」이 벙어리냉가슴 앓기와 직결되는 것을 알기 때문인가? 하나의 예로서 법률에 의해 산업계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하게 돼있는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자리도 계속 사양(?)당하기 때문인가? 둘째,자유의 핵심은 법치(法治)에 있는데 실제로는 입법의 비현실성과 법집행의 자의성 때문에 캄보디아 정글속의 지뢰밭처럼 누구라도,또 언제라도 폭발당하기 쉬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게다가 정책의 투명성은 부족하며,미래예측 가능성과 기존 제도의 갑작스런 변경가능성은 세계적으로 높은 편에 속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자유스러움에서 나오는 창의력을 기대할 수 없으며,또 어떤 의미에선 자유를 주어서는 금방 오게 마련인 혼란을감당하기 어려운 악순환 구조에 빠져 있다.
셋째,정부의 정책 운영수단은 다양한 게 좋은 면도 많지만 역시 직접규제의 비중이 너무 크고,덜 자본주의적 제도가 많아서 외국사람들의 눈에는 우리 경제활동이 대체로 자유스럽지 못한 것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공공섹터의 비중이 매우 높고,주인없는금융산업등 정부의 영향을 받는 분야가 너무 넓다.
심지어 해외투자때 자금소요액의 20%를 자기 돈으로 충당하라거나,어느 회사에는 지급보증도 출자도 안된다고 제한하면서,정부가 마땅히 수행해야할 지원이나 서비스를 은행이나 기업에 대신케하고 있다.
또 채무자의 변제 의욕이나 능력과는 별 관계없이 수표와 어음을 부도내면 감옥행이고,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일개(?) 경제주체들의 희생은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식의 국민 정서가 폭넓게 작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시장경제가 형성될 수 있는기초조건이 의외로 많은 분야에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된 경쟁자가 수적으로 부족하고,가격결정뿐 아니라 시장에의 진입과 퇴출에 제약이 많으며 지리적.분야별 업무영역 선정이 자유롭지 못하다.게다가 정보가 편재돼 있고 그나마 잘 흐르지 않으니 소위 자유롭게 흥정할 수 있는 힘(ba rgaining power)이 골고루 분산돼 있지못하다.
특히 금융산업.국영기업.기간산업일수록 심하고,노동시장.농산물시장.전문서비스시장에서는 다수의 힘에 의하거나 교묘한 수법이 동원돼 자유스런 거래가 심각히 제한되고 있다.
이한구 대우경제硏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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