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개막 시간과 식사 시간의 방정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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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 10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오후 8시에 공연을 시작한다. 토요일엔 오후 1시 마티네 공연이 추가된다. 일요일엔 공연이 없다.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선 오페라는 오후 7시, 발레는 오후 7시30분에 막이 오른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공연 개막 시간은 오후 7시30분. 일요일 마티네 공연은 오후 2시30분부터다. 연주 시간만 4시간30분에다 휴식 2회까지 총 5시간이 걸리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오후 6시에 막이 오른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의 무대이야기

빈슈타츠오퍼는 평일엔 오후 7시 또는 7시30분, 일요일엔 오후 4시 또는 6시30분에 공연을 시작한다. 도쿄 신국립극장의 공연 개막 시간은 주말과 공휴일엔 오후 2시, 평일엔 오후 6시30분 또는 7시다. 평일 오후 2시 공연도 있는데 정년은퇴하고 시간적 여유가 많은 노년층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서울의 경우 음악회는 오후 8시, 오페라ㆍ발레는 오후 7시30분에 시작하는 게 관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음악회도 오후 7시30분에 시작했으나 퇴근길의 교통 혼잡과 야간 시간대 활동이 늘어나면서 30분 늦춰졌다. 주말에는 오후 3시 공연도 볼 수 있다. 연극의 경우 토ㆍ일요일은 2회 공연을 하고 월요일은 쉰다.

18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은 오후 4시에 시작해 8시에 끝났다. 당시 공연 관람은 비교적 시간 여유가 많은 귀족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하루 세끼 식사 가운데 가장 푸짐했던 것은 점심 식사였다. 저녁 식사는 공연이 끝난 다음 오후 9~10시 사이에 가볍게 먹었다. 공연 개막 시간은 관객의 식사 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중산층은 물론 하류층까지 극장을 찾게 되면서 공연 개막 시간도 점점 늦춰졌다. 처음엔 오후 5∼6시였다가 나중엔 오후 8~9시로 늦춰졌다. 도심의 가로등이 정비되고 야간 순찰이 강화돼 귀갓길이 안전해졌지만 대부분의 관객이 해가 뜨면 일터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무작정 늦출 수는 없었다.

마티네 공연이 아닌 경우엔 어차피 공연 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과 겹치게 마련이다. 퇴근길 러시아워와 겹쳐 대중교통이 편리한 도심의 극장이 아니면 저녁 식사를 느긋하게 하는 것은 처음부터 포기할 수밖에 없다. 공연 관람 당일엔 점심 식사를 푸짐하게 한 다음 저녁엔 간단하게 요기하는 것은 어떨까. 공연 전에 식사하지 못했더라도 공연장 로비에서 중간 휴식 시간에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먹거리를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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