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자들, 국제학회서 ‘독도는 한국 땅’ 알려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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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국제 사회에 분명히 알리려면 한국 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자료를 조사해 국제학회 등에 제시해야 합니다.”

로버트 버스웰(55·사진) 북미 아시아학회 회장은 14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임성준)이 주최한 ‘미국 내의 한국학 현황과 향후 과제’ 포럼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미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인 그는 “태평양 전쟁 말기 미·일 협상에서 독도의 반환 문제가 문서에 포함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포함됐다면 한국의 독도 영유권이 분명해졌겠지만, 그렇지 못한 만큼 한국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학자들은 독도를 잘 모르므로 한국 학자들이 연구해 증거를 제시하면 미국도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웰 회장은 이와 관련, “한국학 연구 규모는 중국학이나 일본학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북미 아시아학회 소속 연구자(6700여 명) 중 한국학 연구자는 5%에 그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일본학 연구 성과에 비하면 한국학 자료는 빈약해 한국의 입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동아시아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한국의 위상을 고려하면 한국학 연구자가 중국학이나 일본학에 필적할 정도로 늘어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학 전공자로는 처음으로 북미 아시아학회 회장을 맡았다. 1993년 UCLA에 한국학연구소를 설립해 미국 내 한국학 요람으로 키웠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UCLA에는 200여 개의 한국 관련 강좌가 개설돼 매년 수천 명이 수강한다.

버스웰 회장은 21살이던 74년부터 5년간 전남 송광사에서 선(禪)을 수행했다. 대학에서 아시아학을 전공하다 불교를 체험하기 위해 한국에 날아왔던 것이다. 당시 송광사 방장이던 구산 스님(1901~1983) 밑에서 비구승으로 선을 수행하며 혜명(慧明)이란 법명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92년 『파란 눈 스님의 한국 선 수행기』라는 책을 냈다.

그는 “구산 스님은 부모님 다음으로 나에게 영향을 줬다”며 “5년 동안의 한국 경험이 내 인생의 절정이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송광사 시절 별미로 먹던 도토리묵의 맛이 지금도 아련히 떠오른다”라고 말했다. 껍질 벗긴 도토리를 말린 뒤 절구에 넣고 빻아 가루로 만드는 도토리묵을 그는 ‘젤리’라고 표현했다. 버스웰 회장은 “대학 교수로 일하며 하루 종일 관심이 분산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 때면 송광사에서 선을 수행하던 때가 그리워진다”라고 말했다.

버스웰 회장의 박사 논문은 『금강삼매경론의 한국적 기원』. 그는 원효의 『금강삼매경』과 고려 고승으로 조계종을 창시한 지눌의 전집을 번역하는 등 미국에 한국학과 한국 불교를 소개하는 데 앞장서왔다. 이런 공로로 12일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주는 만해대상(포교부분)을 탔다. 이 상은 독립 운동가 만해 한용운의 문학세계와 사상을 기리기 위해 97년 제정됐다.

글=김민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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