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건부 3者회담' 검토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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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반도 평화 4자회담 제의에 대해 북한이 중국을 배제하고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3자회담을 조건부로 제시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북한이 그들로선 가장 기대할만한중국을 배제하는 이러한 구상을 왜 했는지도 의아 스런 부분이다. 그러나 4자회담과 그동안의 대미(對美).대중(對中)관계를 둘러싼 북한의 입장.처지를 살펴보면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우선 북한으로선 한반도 문제에 중국이 개입하는 게 바람직하지못한 것이다.
북한이 이같은 판단을 내린 저변에는 핵문제를 계기로 지난 3년여동안 미국과의 협상에서 실리와 명분을 상당히 확보했는데 이제와서 중국이 개입하게 되면 상황만 복잡하게 된다는 생각이 자리했을 수 있다.
초점이 흐려지고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전망을 했을 수도 있다.게다가 한국과 수교이후 한국과 상당한 관계개선을 이룬 중국이 미덥지 않았는지도 모른다.『중국을 믿지말라』는 말이 북한외교부내에 돌고 있다는 한 귀순자의 증언은 우연 이 아니다.
따라서 북한이 현재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는 부분은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추진하는데 있어 남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있다고 여겨진다.북한으로선 남한을 배제하면서 미국과의 접촉틀을계속 유지,경제적 실리와 국제적 위상강화 등을 도모할 수 있기를 가장 바란다.그러나 미국이 한국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북한 입장에만 동조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한.미 양국 정상의 4자회담 제안도 북한의 그같은 입장을감안한 것으로 북한은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선 4자회담을 수용하면 지금까지 애써 구축해놓은 「조.미 협상틀」의 근저가 무너지는 셈이며 그 때문에 4자회담을 덥석 받기도 곤란하다.이런 상황속에서 북한이궁리해낸 대안이 「조건부 3자회담」이라는 것이다 .
이 안은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여러가지 이점이 있다.우선 그동안 철통같이 유지해왔던 「미국과만의 협상」에서 일단 한발 물러났기 때문에 국제사회에 양보했다는 유화적 이미지를 내보일 수가 있다.그러면서 이 회담이 실제로 개최되기 위 한 「조건」을 걸어놨기 때문에 언제고 거둬들일 수 있는 여지도 남겨논 것이다.이는 북한이 핵협상때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은 「논의 의제의 세분화 전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즉 협상 상대방에게 자신들의 카드를 최대한 세분화해 제 시하면서 상대방이 호응할 때마다 수확을 거둬들이는 수법인 것이다.
한편 북한은 3자회담 제의를 하면서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걸어놓은 조건에 한.미가 응하면 회담이 열려도 무방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회담에 참석한 뒤에도 의도적으로 한국을 도외시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계산을 했음직하다.
때문에 한국정부로선 3자회담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데다 북한이수용키 어려운 조건들을 전제로 3자회담을 역제의해올 가능성이 커 이를 수용할 여지가 거의 없다.결국 4자회담을 둘러싼 공방은 상당한 시간 계속될 전망이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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