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조간 한돌-우리말연구가 이오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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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모든 책의 글은 가로로 쓰여 있다.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선전쪽지도 모조리 가로로 된글이다.그런데 참 희한하고 괴상하게도 온 국민이 나날이 받아 보는 신문만은 대부분 세로쓰기다.이게 대관절 어 찌 된 것일까. 우리 한글은 가로로 써도 좋고 세로로 써도 좋다.그러나 세로쓰기보다 가로쓰기가 더 좋다.일본 사람들이 쓰고 있는 「히라가나」는 그것을 가로로 쓰면 아주 불편하다.중국글자를 초서로 쓸 때 가로로 쓰면 획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듯이 히 라가나도 그렇다.히라가나는 중국글자를 초서로 만든 글자이기 때문이다.
가로쓰기로 된 글이 세로쓰기로 된 글보다 더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벌써 과학으로 증명된지 오래다.
중앙일보가 가로쓰기로 바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다.가로쓰기로 나온 중앙일보가 내 눈에는 아주 산뜻해 보였다.70세가 넘은 내가 이런데 젊은이들이야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중앙일보는 가로쓰기와 함께 신문 간판도 중국글자를 한글로 바꾸었다.당연한 처리다.가로쓰기에서 남의 나라 글자를 간판으로 내걸었다면 양복 입고 갓 쓴 꼴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사 제목이나 본문에 중국글자를 섞어 쓰는 것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중국글자를 섞어 쓰는 것을 보면 한글로 적어도 될 것을 눈에 잘 띄는 효과를 노려 여기 저기 적당하게 섞어 쓰기도 하고,어려운 중국글자말을 쓰다 보니 그 것을 한글로써서는 얼른 알아볼 수가 없어 그렇게 섞어서 쓴다.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 말을 죽일 뿐이다.
신문이 정말 온 국민의 그릇이 되려면 새소식을 알리거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 앞서 무엇보다 말과 글을 살리는자기혁신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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