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독도 사태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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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국 지명위원회의 독도 영유권 표기 변경을 둘러싼 논란이 일단락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시로 독도의 영유권이 ‘주권 미지정 지역’에서 변경 이전인 ‘한국’으로 되돌려졌다. 5일 방한을 앞둔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컸던 모양이다. 쇠고기 문제처럼 국민 정서와 국제정치의 간극에서 해법을 찾아야 했던 이명박 정부로서도 한숨 돌리게 됐다.

발등의 불은 껐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 내 독도의 명칭은 1977년 결정한 대로 ‘리앙쿠르암’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언젠가는 지명위원회의 새 기준에 따라 독도를 포함한 동북아 분쟁 지역의 영유권이 다시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표기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결정이 반드시 한국 외교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미국은 그간 한국이 독도에 대해 갖고 있는 실효적 지배권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한국의 입장을 배려한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영유권 표기 변경을 둘러싼 논란으로 독도 문제가 미국에서도 이슈화된 것은 앞으로 한국의 부담이 될 수 있다. 또한 표기 변경이 ‘단순한 기술적 조치’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본의 로비 탓으로 돌리며 마치 미국이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처럼 주장하면서 정치적 해결을 이끌어 낸 것은 향후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는 데 과연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미국 내 지한파들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독도 문제를 중장기적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선 독도 문제는 새로운 이슈도 아니고 정부 외교 전략의 미숙함에 기인하기보다는 역사·영토 분쟁이라는 큰 맥락 속에서 진행되었다. 위안부나 역사교과서 문제처럼 국제사회의 동정이나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독도는 주목할 만한 이슈가 아니며 한국 쪽 입장을 지지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

과거에 독도 문제가 한·일 양국 간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한·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씨를 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부시 대통령의 결정으로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긴 했지만, 미국의 입장이 변한 것은 없다. 미국으로선 한국과 일본 모두 동북아의 중요한 동맹국이므로 현실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주기적으로 독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국 내 정치상황과 맞물려 있다. 일본이나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도 일본의 행동이 한국의 실효적 지배권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지나친 대응은 자칫 일본 내 우익 세력의 목소리만 키울 뿐만 아니라 독도 문제를 국제적 분쟁으로 이슈화하려는 그들의 전략에 말려들 소지가 크다. 독도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한다거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 국기와 교과서를 불태우는 행위도 한국의 위상과 이미지에 손상을 줄 수 있다. 국제적 지원을 얻어내려면 피해의식과 음모론적 시각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전략적 마인드를 갖추어야 한다.

국민의 관심이 모아진 이번 기회에 독도 문제에 관해 다년간에 걸친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미국 등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해 독도 문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을 하고 정책적 전략을 만들어 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나 국제교류재단 등이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도를 비롯한 역사·영토 문제는 동북아의 주요 현안으로서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냉정해져야 한다. 정치적이고 일시적인 해결보다는 왜 독도가 한국 땅인지 국제사회에서 수긍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주도할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현 정부가 공언한 외교 안보 분야의 ‘선진화’를 이뤄가야 할 것이다.

<공동 집필>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석좌교수,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스탠퍼드대 한국학연구소 부소장, 전 미 국무부 한국·일본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