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앞에 홀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3호 02면

서해 최남단에 그리 크지 않은 섬, ‘만재도’에 갔습니다. 이야기가 많은 산에 살면서 이야기를 많이 품고 있는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에 일 년에 한 번 욕심을 부립니다. 동서남북 수평선밖에 보이지 않는 먼바다의 조그만 섬에서의 이틀 밤낮이 고요했습니다.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바다 안개가 피어나는 이른 아침에 바닷가를 걷다가 섬의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바위를 지나는 파도와 빛을 바라봅니다. 빛이 무량한 바다를 드러낼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합니다.

이런 고요함 속에 머물다 보면 잠시라도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홀로 있는 나를 봅니다. 바위와 파도와 빛과 내가 일체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아름다워집니다. ‘물외한인(物外閑人)’입니다.

혹시 여름 휴가를 바다로 가신다면 새벽녘에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홀로 걸어 보십시오. 고요하고 쓸쓸한 적막함에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때 아름다운 자신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바다는 수평함으로 세상의 모두를 품고 있습니다. 그 안에 내가 있습니다.


농사꾼 사진가 이창수씨가 사진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