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옥핸드볼은나의인생] <3> 편파 판정의 굴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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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내가 운동을 너무 오래 했나. 이런 꼴을 다 당하게….

지난해 8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 일본과의 경기. 한국은 그때 일본에 1점 차로 패했다. 내가 핸드볼 공을 잡은 이후 일본한테는 져본 역사가 없는데 이날 처음으로 졌다. 우리 선수들은 “뭐야, 응? 뭐야!” 하는 말만 주고받을 뿐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잊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몸만 부딪쳐도 심판이 파울이라며 ‘삑삑’ 호각을 불어댔으니. 정상적인 경기를 하기가 불가능했다. 내 유럽 친구들도 지난해 겨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일본, 카자흐스탄 등을 상대해 본 뒤 “너희 팀이 어떻게 그런 팀에 졌니”하며 놀라워했다. 아시아핸드볼연맹 회장이라는 그 쿠웨이트 인간은 정말 이상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한국 핸드볼은 누가 뭐라해도 아시아에선 무적이다. 그런데 회장이라는 사람이 한국을 떨어뜨리기 위해 일본을 지렛대로 이용한 것이다. 한국 여자핸드볼은 올림픽 티켓을 놓쳤고 쿠웨이트와 같은 회교권인 카자흐스탄이 본선 티켓을 땄다. 남자도 똑같이 험한 꼴을 당하고 회장국인 쿠웨이트한테 본선 진출권을 뺏겼다. 이런 편파 판정이 세계연맹에서 받아들여져 올봄 재예선을 치른 끝에 우리 남녀팀이 나란히 베이징에 가게 된 것이다.

유럽팀과 맞붙을 때면 심판은 또 유럽팀과 한통속이 된다. 1996년 애틀랜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도 심판의 농간으로 우승을 도둑맞은 거나 다름없다. 애틀랜타 올림픽의 덴마크와의 결승전에서 종료 2분을 남기고 우리가 2점 차로 이기고 있었다. 그 시간에 2점 차면 핸드볼에선 사실 끝난 경기로 친다. 그런데 심판이 또 이상해지기 시작한 거다. 덴마크의 슛이 빗나가 공격권은 우리가 쥐게 되고, 점수차를 3점으로 벌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런데 심판이 “우리 측 손 맞고 나갔다”며 덴마크에 공을 넘겨주는 게 아닌가. 뻔히 그네들 손을 맞고 아웃되는 걸 우리가 봤는데 말이다. 이 판정으로 덴마크가 골을 넣어 1점 차가 됐고 연장까지 치른 후 우리는 졌다. 경기 후 라커에서 선수끼리 펑펑 울다가 누군가가 “야, 그래도 은메달이야”하는 소리를 질러 울음을 그쳤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불공정한 판정으로 지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다. 얼마나 힘들게 운동을 했는데…. 고맙게도 주변 친지들, 무엇보다 국민들이 같이 분개해 주고 사랑해 주는 덕분에 다시 뛸 힘을 얻는다. 내 생각에는 우리 팀이 아마 편파 판정 때문에 가장 많이 운 팀이 아닐까 싶다. 유럽에 가도, 중동에 가도 우리는 ‘제발 정상적으로만 판정해 다오’하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한다. 사람들은 “한국 핸드볼이 힘이 없어 당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강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아예 편파 판정에 대비한 훈련을 한다. 감독님 입에서 툭하면 나오는 소리가 “이건 안 불어준다. 너희는 오버 스텝이라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막아라”하는 호령이다. 우리가 미친 듯이 체력훈련을 하는 것도 다 편파 판정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체력이 돼야 편파 판정을 해도 한 발 더 뛸 수 있기 때문이다. 

글=오성옥, 정리=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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