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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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단원(檀園)과 샤라쿠(寫樂) 문답으로 더욱 늦어진 점심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것은 저녁녘이 가까울 무렵이었다.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던 애소가 환한 얼굴로 맞았다.조리하는 틈틈이 공부하는 것인지 식탁 위에 일본어 교과서와 공책이랑연필이 놓여 있었다.
『일본어….』 목이 탄다며 부엌 식탁에 앉아 보리차를 마시던이자벨이 교과서를 들여다보고 의아스런 표정을 지었다.
『일본어 요리책을 보기 위해 공부한대요.』 『요리책을?』 『애소는 전문대학에서 영양학을 전공해 세계 여러나라 요리에 대해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아리영의 설명에 이자벨은 측은해하는 눈매로 애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작고 꼿꼿한 등이었다.
비행기 속에서 애소에 대한 얘기를 간추려 했었다.이자벨은 그것을 되짚는 눈치다.
좀 쉬겠다고 방으로 들어간 이자벨이 한참만에 나와서 도쿄에다전화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사랑의 비밀 통화라면 리빙 룸에서 하지 말고 내 방에서 하셔요.』 애소를 도우며 부엌일을 하던 아리영이 농담했다.
『그래야겠군요.』 이자벨은 정말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리영! 아버님이랑 함께 의논할 것이 있어요.』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나온 이자벨이 이리 오라며 손짓했다.
또 단원 타령인가.아리영은 손을 닦으며 그녀와 함께 아버지 서재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책장 사다리에서 내려왔다.탈춤에 관한 책을 찾는 중이라 했다.
소파에 마주 앉은 이자벨이 신중한 말투로 물었다.
『남편과 상의해서 동의를 얻었는데….애소를 도쿄로 데려가도 될까요? 애소가 낳게 될 아이를 양자(養子)로 삼았으면 하는 거죠.아이를 낳은 다음 애소가 원하면 일본에서건 미국에서건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도 싶어요.』 갑작스런 제의에 아리영은놀라며 아버지 얼굴을 쳐다보았다.
『글쎄,본인이 뭐라 할지.』 아버지도 신중한 말투로 응했다.
『애소를 불러 물어보지요.』 아리영은 당혹감에 사로잡히면서도애소를 위해서는 그것이 차선(次善)의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최선(最善)의 방법.그것은 시동생과의 결혼이다.그러나 이미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애소를 불렀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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