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투표 앞둔 볼리비아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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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남미 볼리비아가 정·부통령 및 주지사 신임투표를 앞두고 극심한 국론분열 위기에 빠졌다. 야당들은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다음달 10일 실시되는 신임투표를 취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고 AFP통신이 28일 보도했다. 그러나 모랄레스 대통령은 “신임투표에서 2005년 12월 대선 득표율인 53.7%보다 낮은 지지가 나올 경우 대통령직을 사퇴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투표에서는 모랄레스 대통령뿐 아니라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 주지사 9명 가운데 8명에 대한 신임을 물을 예정이다.

좌파 정권을 이끌고 있는 모랄레스가 신임투표에 집착하는 것은 5∼6월 동부 4개 주에서 통과된 주 정부의 자치권 강화 때문이다. 비옥한 농토와 천연자원이 집중된 동부의 산타크루스·베니·판도·타리하 주 정부는 모랄레스의 대통령 권한 집중 시도에 맞서기 위해 주민 80% 안팎의 지지를 받아 자치권 강화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네 곳의 주 정부는 세금·재정·천연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됐다. 특히 볼리비아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천연가스 매장량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동남부 타리하 주의 자치권 확대로 모랄레스가 추진하던 에너지산업 국유화 정책에도 제동이 걸렸다.

게다가 헌법상 수도 수크레가 있는 추키사카 주도 11월 주 정부 자치권 강화안을 놓고 주민투표를 할 계획이다. 지난달 추키사카 주지사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70%대의 압도적 지지율로 승리했다.

모랄레스와 야당의 갈등은 지난해 11월 개헌으로 촉발됐다. 여당인 사회주의운동당은 야당 의원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하고, 사유지 보유를 일정 한도 내로 제한하는 사회주의식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천연가스 산업과 농업을 통해 볼리비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동부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해당 지역 주지사들도 주민들의 뜻을 받들어 주민투표 카드를 들고 나왔다. 야당들은 주 정부 자치권 강화안이 주민투표를 통과했기 때문에 신임투표는 당연히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호르헤 키로가 라미레스 전 대통령이 이끌고 있는 보수 야당연합은 2011년 대선·총선을 2010년 전에 조기 실시하자며 모랄레스를 더욱 압박할 예정이다.

한편 자신이 탑승하려던 헬기가 20일 추락한 것에 대해 모랄레스 대통령이 브라질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암살 음모론을 제기해 정국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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