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머쓱하게 한 간판주자들의 실적 부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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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 28면

오랜만에 잔칫집 분위기를 즐기던 증시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주말을 앞두고 발표된 삼성전자 실적 탓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6.19% 떨어지며 4년여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나흘 만에 100포인트 이상 급등했던 코스피지수도 덩달아 28.21포인트(1.73%) 빠졌다.

삼성전자는 2분기에 18조14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순이익도 2조1400억원으로 적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수준에 한참 못 미친 영업이익이 문제가 됐다. 2분기 영업이익이 1조8900억원으로 시장 예측치(2조1000억원)보다 2000억원 이상 적었다. 올 1분기에 비해 12%나 쪼그라들었다. 덩치가 커졌지만 실속이 없어진 것이다. 지난 4월 ‘왕의 귀환’으로 비유되던 삼성전자의 화려한 부활은 ‘석 달 천하’로 끝났다. 앞다퉈 실적 전망과 목표 주가를 올렸던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이를 다시 끌어내리느라 분주하다.

주목할 것은 시장이 예측해 온 실적치도 점점 낮아져 왔다는 점이다. 5월만 해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각각 2조2000억원과 2조5000억원 이상으로 보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세계 경제가 둔화하고 환율 상승이 주춤해진 상황에서도 두 예측치는 1000억원가량씩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이렇게 낮춘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한 실적에 실망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더 큰 문제는 하반기다. “성수기인 하반기에도 이익이 크게 개선되기는 어렵다”는 게 삼성전자 IR 담당자의 얘기다. 주력 품목인 LCD의 가격 하락과 반도체 부문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경쟁 기업들과의 가격 전쟁도 끝날 줄 모른다. 미국 등 세계 경제의 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태에서 정보기술(IT)을 필두로 한 수출주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게 됐다.

대표적인 환율 수혜주로 꼽혀온 현대자동차도 비슷한 실정이다. 매출(9조1067억원)은 기대를 웃돌았지만 순이익(5469억원)은 예상치를 20% 가까이 밑돌았다. 수출이 늘었지만 고유가 여파로 중·소형차가 주력이 되다 보니 생각보다 이익이 줄었다고 한다. 환율 효과보다 세계 경제의 어려움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4월 말∼5월 초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뒤 떨어지고 있는 주가 그래프도 삼성전자와 판박이다. 현대차와 같은 날 실적을 발표한 내수주의 대표주자 SK텔레콤도 마찬가지였다. 매출(2조9313억원)은 기대에 부응했지만 순이익(8930억원)이 기대보다 19%나 밑돌았다. 내수가 생각보다 나쁘고, 앞으로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실 실적에 대한 실망감은 기대가 과도했던 측면이 있다. 원화 약세로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고, 조선·철강 등이 호황을 누린 것에만 주목해 세계 경제가 고유가와 소비 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내수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 기업의 외형과 실력이 커질수록 세계 경제의 흐름이 국내 경기와 기업 실적에 미칠 영향도 커지기 때문이다.

‘행복 방정식’이란 게 있다. 기대를 분모로, 성취를 분자로 놓고 계산한 수치다. 똑같은 성취라도 기대가 크면 행복도가 낮고, 기대가 작으면 높아진다. 대표 기업들의 실적 발표를 전후한 증시 역시 행복 방정식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해외나 국내 모두 경기나 실적에 대한 불투명성이 다시 커진 지금, 투자 심리의 작은 변화로 주가가 출렁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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