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투데이

지중해연합과 중동 평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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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제안한 지중해연합이 지난 13일 공식 출범했다. 프랑스 최대 국경일인 혁명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파리에서 열린 지중해연합 정상회의에 40여 개 가입국 대부분의 정상이 참석했다. 애초 회원국은 지중해 연안 국가로 한정하려 했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의견에 따라 유럽연합(EU)의 모든 회원국에도 문호가 개방됐다. 중동·북아프리카 회원국 일부는 EU가 수적 우세를 앞세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개입할까 회원국 확대를 반대하기도 했다.

회원국 확대 문제만큼 정상들의 참석률도 관심거리였다. 실제로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중해연합 정상회의를 준비하면서 회의에 참석하는 정상들이 적을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국정 지지도가 급락하던 시점이라 더욱 그랬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런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모하메드 6세 모로코 국왕과, 출범 직전 불가입을 선언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만이 참석하지 않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자리를 빛냈다.

EU·중동·북아프리카라는 특수성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40여 개국 정상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사진 한 장 찍은 것밖에 없더라도 사르코지 대통령이 정상들끼리 서로 만날 기회를 마련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칭찬할 만하다. 덕분에 7월 중순 파리는 세계 외교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지중해연합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사르코지 대통령의 전략적 사고도 유효적절했다. 그는 회원국 간 실용적 협력을 강조했다. 그래서 환경 오염과 지중해 수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가장 먼저 오른 것이다. 중동 평화처럼 예민한 현안은 주요 의제로 설정하지 않았다. 주요 의제로 설정하지 않았어도 정상회의에서 중동 평화 문제는 저절로 논의됐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중동 국가 사이에서 논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상회의에서 이뤄낸 최고의 작품은 바로 시리아-레바논 간 외교관계 복원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주선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미셸 술레이만 레바논 대통령이 만나 양국 간 대사관 설치에 합의한 것이다. 시리아는 60년 가까이 레바논과의 관계 복원을 망설였고, 레바논은 내전의 상처가 여전히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관계를 복원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본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얼굴도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예상과 달리 출발이 좋았던 지중해연합의 첫 정상회의는 끝났다. 그렇지만 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의 밝은 표정이 중동 평화라는 난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중동의 현실을 살펴보자.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부패 스캔들로 인해 정치적 기반이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그가 실각하면 팔레스타인에 적대적인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가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다.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정치적 입지가 그다지 넓지 않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는 여전히 압바스 수반에게는 버거운 정적이다. 지중해연합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EU와 지중해국가 간의 협력체 ‘바르셀로나 프로세스’도 되돌아보자. 1995년 협력체 탄생 직후 중동 평화는 곧바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분쟁으로 인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40여 개국 정상들이 파리에서 귀국하자마자 지중해연합을 잊어버릴 수 있다. 앞으로 지중해연합이 이 지역 내 주요 협력체로 자리잡으려면 중동 평화에 대한 전략과 경제 협력에 대한 구체적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상회의에서 찍은 밝은 표정의 사진만이 지중해연합의 유일한 성과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 있다.

파스칼 보니파스 프랑스 국제관계 전략문제연구소장
정리=강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