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리바이벌 붐-양귀자"희망" 현기영"아스팔트"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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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창작은 산고(産苦)에 비유된다.
작품을 발표하고 독자의 평가를 기다리는 작가들의 조바심은 산모가 갓난아기의 손가락을 헤면서 정상임을 확인하는 마음과 같다. 독자의 반응이 열화같으면 더없는 희열을 맛보지만 반응이 기대 이하면 심한 심적 갈등을 겪는다.
작가로서의 모든 역량을 쏟은 작품일 경우 그 아픔은 더욱 크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모든 것을』『천년의 사랑』 등으로 지금 국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로 꼽히는 양귀자씨도그런 뼈아픈 고통의 기억을 안고 있다.
양씨가 90년에 두권짜리로 펴낸 『희망』은 어느 일간신문에 연재됐던 것을 묶은 것이지만 작가의 입장에서는 『원미동 사람들』로 대성 가능성을 인정받은 직후라 어느 작품 못지 않게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상 책으로 묶자 신문 연재 소설이라는 한계때문에 비평가로부터 외면받다가 슬그머니 서점 진열대에서 사라지는 운명에처했다. 그 충격으로 양씨는 오랫동안 병원신세까지 져야 했다.
결과적으로 그때의 고통이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웠지만 양씨로서는 그때의 악몽을 결코 잊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독자들의 심판대에 『희망』을 새롭게 내놓았다.세번째 도전이다.
이처럼 여러 사정으로 독자들의 「버림」을 받았다가 다시 독자들의 심판을 노리는 소설들이 줄을 잇고 있다.
양귀자씨의 『희망』(살림),현기영씨의 소설집 『아스팔트』(창작과 비평사),김지연씨의 『씨톨』 등이 이미 새롭게 단장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승우씨의 대산문학상 수상작 『생의이면』,최일남씨의 『숨통』등이 손질을 서두르고 있다.
양귀자씨의 『희망』은 나성여관이라는 허름한 여관에 장기 투숙한 다양한 인물을 내세워 황금 만능주의.노동 운동.실향민 문제.학생운동 등 80년대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갈등을 압축한작품이다.
그때의 악몽이 얼마나 지독했던지 양씨는 그후로 신문 연재와는철저히 인연을 끊고 지낸다.
소설집 『순이삼촌』『마지막 테우리』 등으로 널리 알려진 현기영씨도 본인이 가장 아끼는 소설집 『아스팔트』가 문인들간에도 자기 작품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발표 10년만에 다시 내놓았다.
당시 이 작품에 앞서 발표됐던 작품집 『순이 생각』이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과격성」때문에 판금상태여서 『아스팔트』에 담긴 작품은 예술적 형상화에 치중한 것들이다.
그 때문에 『아스팔트』는 작가 개인으로서도 작품경향을 뚜렷이구분짓는 것이어서 애착이 더욱 강하다.
이 작품집은 창작과 비평사가 85년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 폐간되고 창작사라는 이름으로 어렵게 출판을 하던 때 나왔다는 시대적 아픔도 안고 있다.
문이당에서 다음달에 내놓을 이승우씨의 『생의 이면』은 작가가창작에 버금가는 열의를 쏟고 있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정신분열증과 죽음,어머니의 개가로 지극히폐쇄적인 인물로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쫓는 이 소설은「그를 이해하기 위하여」「지상의 양식」「낯익은 결말」등 3부로구성된 연작형식의 장편소설.
이씨는 「낯익은 결말」부분의 긴장도가 떨어진다고 판단,이 부분을 완전히 새롭게 썼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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