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킬리만자로의 눈" 헤밍웨이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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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흘러간 옛노래를 들으면 향수에 젖게 된다.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난다.『바닷가에서』나『영상』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 노래가 유행하던 시절의 자기로 돌아가 열아홉의 바다나 미완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때때론 소설도 그렇다.카뮈의 『이방인』은 차가운 자취방에서의진지했던 독서를 떠올리게 한다.배를 깔고 한가롭게 원고지를 메워나가던 습작시절의 행복을 다시 맛보게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미 읽은 책은 좀처럼 다시 읽지 않는다.독서목록을 보면 이미 학창시절에 읽었노라는 꼬리표가 딱 붙어있다.내용이며 줄거리를 까맣게 잊어버렸는데도 「읽었는데 뭘」 하고 거들떠보지 않는다.새로 출간된 책을 따라잡기 에만 바쁜 것이다.새로운 것에 대한 지나친 욕구는 종종 병적인 허기를 유발시켜 비효과적인 독서 과소비를 초래한다.이럴 땐 눈 딱감고 읽었던 책을 다시 드는 것이다.그 책을 처음 읽던 시절로 돌아가는 즐거움이 있고,다 읽고 난 뒤에는 삶을 이해하는데 나 자신 그동안 이렇게 성숙해 있었구나 하고 놀라게 된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은 몇번이고 다시 읽기에 좋은 작품이다.
눈덮인 킬리만자로 산봉우리에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있다.과연 표범은 그 높은 산봉우리 위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서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썼다.그러나 그의 대답은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명료하지 않다.그의 대답은 매번 다르게 읽힌다.20대 때의 이해가 다르고 30대 때의 이해가 다르다.40대에는 또 다를 것이다.그 가 이 소설을 썼던 나이인 60세가 되면 표범이 찾아오르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알게 될까.
어쨌든 지금으로선 나이에 어울리는 해답을 얻어 가질 수밖에 없겠지만 먼 훗날 흘러간 옛노래가 돼 있을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들으면 이 소설이 또 읽고 싶어질 것이다.
(소설가) 구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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