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팔고 선물 사고’ 외국인 달라진 패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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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최근 국내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선물·옵션 및 시장분석 담당자는 혼란에 빠졌다. 외국인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매매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수급의 균형추가 외국인에게 기울어 있는 마당에 외국인이 ‘변칙’ 스타일로 나오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외국인의 변칙 매매가 시장의 위험을 점점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엇박자 매매 패턴=주가지수 선물은 장래 주가 전망을 사고파는 것이다. 앞으로 주가가 오를 것 같으면 선물을 산다. 반대로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보이면 선물을 미리 팔아 놓는 게 정석이다. 그동안 외국인은 이런 매매 패턴에 충실했다. 틀릴 때도 있지만 시장 지배력이 커서 맞는 경우가 많았다.

한데, 지난달 26일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현물은 계속 팔면서 갑자기 선물을 대거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이후 외국인이 판 주식은 4조원에 이른다. 반면 선물은 2만6000계약이 넘게 샀다. 15일엔 1만 계약 이상 순매수했다. 더욱이 외국인이 판 주식 중 상당 부분은 공매도에 의한 것이어서 이 같은 매매는 더 헷갈린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떨어지면 싼 값에 되사 이익을 챙기는 방법이다. 외국인들은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봤다는 얘기다.

실제 이 기간 주가는 12% 이상 떨어져 외국인도 선물에서는 손실을 봤다. 동양종금증권 원상필 연구원은 “2004년 이후 외국인이 하루에 선물을 1만 계약 이상 사들인 적이 일곱 차례 있었다”며 “그때는 모두 주가가 5~20일간 반등하는 시점이었고, 지금처럼 주가가 급락할 때 대규모로 선물을 산 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분분한 해석=변칙 매매의 절정은 지난주 옵션 만기일(10일)을 즈음해 나타났다. 외국계 증권사 창구를 통해 5000억원이 넘는 현물 사자 주문이 들어왔다. 공식 통계로는 기관(증권사)의 매수로 잡혔지만, 시장에선 외국인이 산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사상 최대 규모인 1만6000계약 분량의 선물을 매도했다. 하지만 이번 주 들어선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 대규모 현물 매도와 선물 매수로 되돌아갔다.

증권가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선물·옵션 분야를 맡고 있는 한 애널리스트는 “담당자끼리 메신저로 의견을 나누고, 리서치센터 내부회의도 열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번 주 들어 애널리스트들의 리포트가 나왔지만 역시 해석은 제각각이다. 가장 우세한 의견은 현물 공매도를 선물로 헤지했다는 해석이다. 주식을 대거 팔아 놓긴 했지만 혹시 주가가 오르면 손해를 보니까 보험 차원에서 선물도 샀다는 얘기다. 반면 공매도를 한 세력과 선물을 산 세력이 다를 거라는 분석도 있다. 선물을 산 외국인은 주가가 너무 떨어지니까 오를 것을 예상해 투기적으로 산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국증권 김학균 선임연구원은 “모두가 해석일 뿐 아직 정답은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커지고 있는 위험=분명한 건 외국인의 변칙매매로 시장의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물 주가는 급락하는데 외국인이 선물을 사는 바람에 선물 가격은 덜 떨어졌다. 이러다 보니 선물을 팔고 현물을 사는 프로그램 매수차익 거래가 크게 늘었다. 현재 프로그램 매수차익 잔액은 8조원에 근접하고 있다. 이는 현물 주가가 반등하면 언제든 쏟아져 나올 잠재적인 매물이다. 대우증권 심상범 애널리스트는 “외국인이 현물 매도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프로그램 매물까지 쏟아지면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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