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후보밀착취재>1.브로커등쌀에 울며 겨자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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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11총선의 현장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중앙일보는 이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실태를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5명의 기자들이 1백시간에 걸쳐 출마예상자들의 활동을 밀착취재했다.그 내용을 시리즈로 게재한다.
[편집자註] 설을 며칠 앞둔 지난 14일 서울강북의 신한국당A후보 사무실.저녁회의를 막 끝낸 A후보에게 두툼한 봉투를 든모 운수회사 조합장이 찾아왔다.그는 자신이 들고온 봉투를 가리키며 『이 안에 지역구에 사는 운전기사 50명의 명단이 있 다.이들로부터 지지 도장을 받아올테니 2백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A후보가 거절하자 그는 『그럼 잘해보라』고 화를 내며 문을거칠게 닫고 가버렸다.
열흘쯤뒤 A후보는 그 운수회사가 있는 동네에서 자신에 대해 『젊은사람이 버릇없고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소문이 나도는걸 알게됐다.역추적 결과 소문의 진앙지는 자신을 찾아왔던 조합장이었다. A후보가 홧김에 『고발해야겠다』고 하자 사무국장이 펄쩍뛰었다.『선거를 망친다』는 거였다.A후보는 고민끝에 『나를 욕하지만 말아달라』며 울며 겨자먹기로 30만원을 주고 입을 막았다.A후보측은 그뒤 이런식으로 찾아오는 브로커들은 아 예 20만원 정도씩 주고 끝내고 있다.
경기지역에 출마하는 자민련의 B후보에게는 공천을 확정받자마자지난 지방 선거에서 낙선한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기 시작했다.그들은 『내게 2천표가 있다』『1천만원을 안주면 3천표가 상대방후보에게 갈것』이라며 협박을 해댔다.『브로커들 이 달라는 금액을 합해보니 최소한 7억원은 있어야겠더군요.』 B후보는 브로커들의 말마따나 「멋모르고」정치판에 뛰어든 자신에 회의를 느끼고있다. 브로커들의 등쌀에 시달리는건 여당 후보들이 더 심하다.
「여당은 조직,야당은 바람」이라는 말처럼 여당의 선거운동은 각동과 통.반을 거미줄처럼 엮어놓은 운동원들이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한 현역의원은 선거때마다 이런 선거꾼들을 아예 연봉제로 계약했다.한사람에 2천만원씩 상시 운동원으로 고용하고그때 그때 따로 추가 활동비를 지급하는 식이었다.
한데 개정 선거법에선 1개 동당 3명이상의 유급선거운동원을 두지 못하게 했다.그러자 당연히 선거운동자금이 내려올 것이라고생각하던 기간 조직원들이 『왜 이번엔 돈을 안주느냐』며 아우성을 쳤다.
경기도에서 출마하는 C후보측은 이런 돈을 「조직가동비」라 부른다고 했다.『처음에는 정책과 공약,인물됨으로 유권자들에게 직접 접근하려고 했습니다.한데 돈이 안내려가니까 기간 조직원들이운동을 해주는건 고사하고 마구잡이로 흑색선전을 하고 다닙니다.
이들이 선거브로커가 된거죠.』그래서 C후보측은 결국 굴복했다.
C후보는 각종 단체표를 몰아주겠다는 「철새브로커」들 외에 기간조직원들을 움직이는 「조직가동비」로 10억원을 책정했다.『그들에게 돈을 줘봤자 표가 되지 않는다는 건 압니다.하지만 당선은못시켜도 낙선은 시킬 수 있는게 브로커입니다.』 C후보측의 말이다. 개정 선거법 제2백30조 1항은 「금품을 주고받으면 5년이하의 징역에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금품을 요구하거나 이를 알선,권유하면 7년이하의 징역과 1천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주고받은 것보다 달라고 요구한 걸 더크게 처벌해 브로커를 근절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그런데도 선거철만 되면 유지라는 명목으로 혹은 여론선도자라는 미명아래 선거꾼,선거 브로커가 여전히 판치고 있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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