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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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난데없이 나타난 미인을 놀란 눈으로 올려다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아리영은 정답게 목례했다.
『집 사람과 큰 처남입니다.』 우변호사는 체념한 듯 두 남녀를 소개했다.
큰 처남이라는 사람이 황급히 일어나 인사했다.지갑에서 명함을꺼내려다 그는 맥주병을 쓰러뜨렸다.병 바닥에 조금 남은 맥주가테이블 위에 쏟아지며 하얀 거품 띠를 일으켰다.
『두 장 주셨군요.』 허둥대며 준 명함이 두 장이나 겹쳐있는것을 확인하며 아리영은 여유롭게 미소지었다.
『…시골집과 서울집 두 군데에 한 장씩 간직하겠어요.』 『어머니가 도움받고 계시는 분이에요.』 우변호사가 변명처럼 그들에게 아리영을 소개했다.
『도움은 제가 받고 있어요.저희 할아버지 책을 서여사님 출판사에서 펴내 주시기로 했으니까요.친정 어머님도 거기서 뵈었습니다.』 아리영은 여인을 내려다 보았다.
금실 꽃무늬를 드문드문 수놓은 분홍빛 실크 투피스가 통통한 그녀의 몸매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잠두콩 만큼한 비취 반지가 왼쪽 약지에 두드러져 보였다.보통 얼굴이었다.귀염성있는 생김새였으나,짙은 눈화장이 얼굴의 조화를 깨뜨리고 있었 다.
우월감을 느꼈다.
동시에 우변호사가 초라하게 여겨졌다.
-이 사람은 결코 이혼하지 못할 것이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리영은 얼른 발길을 돌렸다.여인은 끝내 일어나지않았고,인사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막연한 대로 라이벌 의식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큰 처남이라는 남자는 황홀함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에서 못 만나는 사람을 일본서 만난다더니 정말인가 보네요.』 아리영은 제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시동생을하코네서 보고 도망친 것이 새삼 한심스레 돌이켜졌다.
『특히 이 식당이 그렇습니다.기업인.정치인 할 것없이 저녁때여기 앉아있으면 서울선 만나기 어려운 분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아리영은 두 장이나 얻어 온 명함을 식탁 위에 나란히 폈다. 원양 수산업 관계 회사의 대표였다.
「약혼녀」라는 여성이 명함을 들여다 보고 말했다.
『연옥이 아버님도 수산업 관계 회사에 다니고 계세요.조그만 기업이지만….이 회사는 대기업이에요.』 「연옥이 아버지」란 정길례여사의 남편이다.
큰 처남이라는 남자가 계속 힐끔거리며 뒤돌아보고 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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