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週를열며>영혼과 양심을 흔드는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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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연말에 있었던 일이다.한 성직자가 역전에서 불우이웃을 위해 종을 치며 모금하고 있었다.동참하는 사람들에게 깍듯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얼마 뒤 다른 종단의 한 성직자가 나타났다.뻔히 보이는 곳에자리를 잡고 땅에 엎드려 큰절을 하며 역시 모금하는 것이었다.
먼저 자리한 성직자는 약간 화가 치밀었다.다른 곳으로 옮기도록하려고 가까이 다가갔다.그러나 그 분은 누가 가까이 오건 말건,누가 돈을 놓건 말건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그저 절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다가간 성직자는 한마디의 말도 건넬 수 없었다.한참을 우두커니 그대로 서 있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말았다.그 땐 이미 화가 가라 앉았으며 미운 생각도 모두 없어진 채였다.
석양이 되자 땅에 엎드려 절을 하던 그 성직자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모아진 돈을 몽땅 털어 옆의 모금함에 집어넣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이 감동적인훈훈한 모습은 종을 치며 모금했던 그 성직자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렇다.도(道)의 세계는 하늘처럼 텅 비어 통하고 땅처럼 가득해 충만한 세계다.도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누구의 영혼이라도,누구의 양심이라도 뒤흔들어 놓고야 만다.그 속엔 무엇이있어 그리 될까.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내가 없으니 업적 등을 생각하며 번뇌하는 일이 없다.
하는 일마다 자연스럽고 극히 자유스러울 뿐이다.누가 돈을 내건말건,모아진 그 돈이 많건 적건,모은 돈을 누가 누구에게 전하건 그 아무 것에도 묶이지 아니한다 .
일심으로 정성을 들이다가 그것을 이웃에 몽땅 넘겨주고 유유히사라지는 것으로 족하다.이처럼 도의 세계에서 사는 한 성직자의모습은 우리의 영혼과 양심을 뒤흔들어 놓는 신선한 감동이다.
암울했던 80년대 초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면 으레 읽는 몇권의 책이 있었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도 그 중 한 권이다.이 소설은 당시 학생들의 영혼과 양심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대학 신입생들,꽤 바르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그들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신이 알게 모르게 저질러 온 죄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자각하고 고민하게 된다.그 죄란 불행한 이웃 곁에서행복하게 웃었다는 죄였다.
그보다 더욱 큰 죄는 그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것이다. 이러한 죄를 깨달으면서 그들은 현실의 문제는 이론으로부터가 아닌 영혼으로,그리고 양심으로부터 깨우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들은 지금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이 돼 기업의 후계자가 되기도 하고,각 분야에서 중견 지도자가 되기도 했다.이번 국회의원 선거에도 그들이 많이 출마하는 것을 지켜 볼 수 있다.이는 우리 사회에 밝은 희망을 주는 일이다.왜냐 하면 그들은현실의 문제를 영혼과 양심을 저버린 채 사회과학적 이론만으로 접근해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미 20대 초에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 밝은 희망 따라서 그들은 경직된 조직의 일원이 된 채 교조주의적 사고에 빠져 안주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이미 20대에 불우한 이웃의 곁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는 것,그 자체가 큰 죄임을 깨달은 사람은 일생을 통해 그 인생철학이 쉽게 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각계 각층의 영혼과 양심을 흔들어 놓을 수있는 신선한 감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고대하고 있다.
趙正勤교무.원불교 교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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