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제의 잠정평화협정 미국,한국배제땐 수용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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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2일 발표된 북한의 대미 잠정평화협정 제의에 대한 미행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정전협정이 유효하기 때문에 새로운 협정이불필요하다.한국이 빠진 어떠한 협정도 북한과 체결하지 않는다.
』 기존입장과 다를 바 없다.그러나 행정부내 관련인사들은 단정적 해석을 유보한 채 북측제안의 정책적 함의(含意)분석에 돌입했다. 워싱턴내 북한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첫째,한.미 양국정부의 공식입장과 큰 차이가 없는 견해다.
즉 남한을 배제한 채 대미관계 개선을 겨냥한 북한전술의 일환이란 해석이다.둘째,북한의 이번 제의는 지난해초 제임스 릴리 전주한미대사 일행의 방북시 「평화협정 체결이전(以前) 과도적 조치」란 이름으로 북측이 처음 소개한 이후 보다 구체화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미 평화협정에 이르기 위해 묘안(妙案)을 찾고 있는 북한은지난해 9월 카네기평화재단의 셀리그 해리슨 편에 북측 구상의 일면을 전했으며 그후 그 내용의 구체화 작업을 계속해 왔다는 해석이다.
두 부류가 모두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이 있다.적어도 한국이참여하지 않은 협상,한국과 사전 협의하지 않은 논의에 말려 들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 제의를 심각하게 들여다 보고 있는 이들의 분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즉 핵문제로 미국과 마주앉게 된 북한은대미관계 심화를 위해 제2단계 조치로 평화협정문제를 들고 나온것인 만큼 북측 제의를 단순히 선전 차원에서만 보아선 안된다는것이다. 더욱이 행정부가 북한의 핵동결조치 이후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들을 북측이 소상히 파악한 바탕위에 나온 제의란 점을강조하는 이들도 있다.미국은 북.미 기본합의문이 비교적 순조롭게 이행되는 상황에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북측의 재 래식무기 후방 철수 및 감축(減縮)등의 조건을 내걸고 있다.
또한 북측이 정전협정을 실제로 무시하는 마당에 비무장지대안에서 돌발적인 무력충돌사태때 이를 논의할 창구가 정상 가동할 지우려하는 미국이다.특히 북한내 식량난과 경제사정 악화 등을 이유로 극한상황에서의 도발 가능성을 운운하는 것이 미국내 논의의현 주소다.
요컨대 북한당국이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역이용한 전형적인 북한판 행보라는 해석이다.
이제까지 그래 왔듯 한.미 양국이 현 상황 타개를 위한 새로운 방안을 협의하고 북측에 선(先)제의하지 않는 한 북한의 공세적 제의는 계속될 전망이다.
미군 유해문제 논의를 위해 북.미간 군사접촉의 불가피성을 미국도 인정하는 상황이다.한동안 단절됐던 안보문제 논의를 위한 미국학자들의 방북을 북한당국이 허용하기 시작한 것도 대미 제의와 관련한 북측의 집요한 공략을 예고하는 대목이란 설명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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