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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서 학부모에게 바라는 딱 두 가지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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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아들처럼 아껴주시고 칼럼 내용에 대해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한부장님께서 식사 중에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6학년 범용이 알지 그 아이 어때?"

6개월 동안 매일같이 만난 범용이라는 학생은 친구들 사이에서 호감도도 높고 반에서 1~2등을 다툴 만큼 성적도 우수한 아이였다. 그리고 계발활동 시간에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성실하고 선생님들에게 언제나 예의 바른 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 그 아이 너무 괜찮은 모범생인데요. 저도 예뻐하는 아이이고요. 그런데 그 학생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아니 범용이 그 아이가 저학년 아이의 물건을 가져가서 안돌려주고는 연락을 끊어버려서 민원전화가 와서 말이야"

부장님의 말을 듣자마자 평소 보아온 범용이의 태도를 떠올려볼 때 너무 의아하였기에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했을 리가 없는 데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다.

부장님께서는 나의 이런 반응을 보고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김범준선생님. 선생님도 아이가 말썽을 피우거나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 문제의 아이 부모님께 전화를 한 적이 있죠? 그리고 그 학생의 문제나 최근에 학교에서의 생활 태도와 관련된 여러 상황에 대해 아이의 부모에게 이야기했을 때 매번은 아니지만 어떤 학부모들은 정색하는 반응을 보일 때도 있잖아. 내 아이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아이를 두둔하면서 말이야. “

"네. 맞아요. 학교에서와 집에서의 모습이 다를 수도 있고 부모가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다른 경우도 많음에도 어떤 학부모는 담임인 제가 하는 말을 전혀 믿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절 의심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바로 그 느낌을 지금 내가 김범준선생님에게 받았어. 아이들은 언제나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어.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방향일 수도 있지. 아마 김범준선생님도 아이의 문제 행동과 관련하여 학부모에게 전화를 하게 될 때 학교에서의 지도만으로는 역부족일 경우 심사숙고를 한 후 전화를 하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아이의 잘못한 점을 꼬집어 말해주는 악역을 맡게 되지. 당연히 ‘당신 자녀가 문제아’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편한 부모는 없을 테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는 아이 편에서 반론을 하게 될 거야.

이럴 때 교사의 입장에서는 학부모가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을 수용해주고 교사의 교육적 견해에 대해 존중해주길 바라지만 사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기가 생각해 온 자신의 아이의 모습과 다른 견해를 가진 담임교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지. 담임교사의 말을 수용하기 보다는 담임교사가 성급하게 내 아이를 판단한 것이고, 당신이 틀렸고, 다른 뭔가를 원하는 것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게 돼. 지금 김범준선생님이 범용학생의 단편만으로 성급하게 나의 말을 부정했듯이 말이야.

난 교사이기도 하지만 자식을 키워 본 학부모이기도 하잖아. 그래서인지 교사의 입장과 학부모의 입장 모두가 이해가 되더라고. 그래서 아이의 생활지도나 교육문제로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을 때 그분의 견해와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였고, 그분의 의견이 틀렸다는 확신이 들어도 전화 중에는 절대로 아이 편에서 변명을 해주지 않았어. 그분의 견해를 존중하고 마지막 인사로 앞으로도 내 아이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말을 잊지 않았지.

물론 그분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고 견해가 다를 수도 있지만 아이의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교육적인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잖아.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만 인간을 가르치는 교육에서도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서로간의 ‘신뢰’가 우선 성립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더듬어보니 나 역시 학부모들과의 전화통화 중에 벽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머, 선생님 우리 은혁이가요?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는데요."
"제가 알아볼게요. 그 아이 집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교사의 말 보다는 직접 확인해보고 아이의 정당성을 증명해보이겠다는 식의 답변이나

“저희 아이가 일부러 그랬겠어요. 다른 이유가 있는데 선생님께서 모르시는 건 아니세요?”

식의 반문을 듣기도 하였다.

담임교사로 부터 아이의 문제 행동과 관련된 전화가 왔다면, 아마 전화를 하기 전에 담임교사는 아이와 여러 번 행동 교정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개선되지 않은 경우이거나 문제가 심각한 경우일 것이다. 이럴 경우 반문이나 무조건 아이 편에서 변명을 하는 것 보다는 교사의 교육적인 전문성을 신뢰하고 교육적 처방이나 행위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어렵다면 교사의 교육적 견해에 대해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만이라도 가져 준다면 담임교사는 아마 학부모의 작은 신뢰와 배려의 말 한마디에 용기와 교육적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복도를 지나치다 가끔 우리 반 아이의 부모이기 한 선배교사와 마주칠 때가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모범생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늘 "요즘 성현이가 말썽을 피워서 선생님을 많이 힘들게 하죠? “라며 인사말을 듣는데 그 분의 말 한마디가 한참 후배교사인 내겐 단순한 인사치레 이상의 의미를 준다.

담임교사와의 전화 통화나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교사의 인격과 학부모의 인격이 상호만남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바람직한 관계는 서로의 관계에 장애가 되는 불신이나 적대감 등의 막을 제거하고 존중과 믿음을 전제로 한 대화를 통하여 인간적인 만남의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교사로서 학부모께 바라는 두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첫째는 교사의 인격과 교육적 전문성에 대한 '신뢰' 이고,
둘째는 교사의 교육적 노력을 격려해 주는 힘이 되는 '교사의 의견을 수용하는 아량' 이다.

김범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