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드문 지점 확인전화도 안해-韓銀 수표사기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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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국은행 구미사무소 당좌수표 사기인출사건은 중앙은행을 비롯한금융기관들이 얼마나 허술하게 돈 관리를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범인들은 은행과 중앙은행간에 거래되는 지급준비금을 노려전문적인 범행을 했으나 은행들은 방심하고 있다 당했다.
시중은행은 한은에 수시로 지급준비금(예금의 일정 비율을 한은에 예치해 놓는 돈)을 쌓아나가다 현찰이 필요할 때 한은 당좌수표를 이용해 찾아 쓴다.
사건이 일어난 지난 17일은 설 직전이어서 한은 구미 사무소만 해도 하룻동안 1백40억원이 나가는등 자금 인출이 많았다.
범인들은 이처럼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용했다.이번 사건의 의문점.문제점을 짚어본다.
◇한은의 확인 절차가 어수룩했다=시중은행에 돈을 내줄 때 한은은 두가지 확인 절차를 거친다.우선 당좌수표가 「진품」인지를가린다.이에 대해 한은측은 『수표용지가 진품인데다 대동은행 책임자의 명판과 인감이 정교하게 위조돼 있어 속았 다』고 밝혔다. 다음은 돈을 찾으러 온 사람의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한은측은 범인들이 수표 뒷면에 「이정수」라는 가명과 함께 주민등록번호(690218-1764248)를 엉터리로 기재했으나 확인하지않았다. ◇당좌수표 일련번호가 건너 뛰어졌다=한은이 지난해 11월17일 대동은행 구미지점에 준 당좌수표는 1백장.그동안 16장을 썼으므로 정상적이라면 17번째 당좌수표를 써야하는데 이번 수표는 99번째 것이었다.당연히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은측은 『일련 번호 안에만 들면 굳이 순서대로 수표를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고 해명했다.
◇대동은행 왜관지점이 현찰을 꺼내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왜관지점(17일 현재 수신고 2백52억원)은 규모가 작아 평소 한은과의 거래가 거의 없다.때문에 왜관 지점이 돈을 찾으러 왔다면 한은은 한번쯤 의심을 품을만 했다.
이에 대해 한은측은 『자금이 많이 필요한 설 직전이어서 의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그만 지점에서,그것도 토요일 마감 시간(오후1시30분)직전인 오후 1시에 9억원씩이나 찾아가는 점을 한은측이 의심해 확인 전화 한통만 걸었어도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대동은행은 수표 분실 사실을 왜 몰랐나=대동은행측은 『수표책의 뒤쪽 부분 중 한장이 잘려졌기 때문에 사고가 날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해 당좌수표 관리에도 허점이 있음을 드러냈다. ◇한국은행에 감시카메라가 없다=구미시공단동 중소기업은행 구미지점 3층에 세들어 있는 한은 구미사무소에는 일반은행과는 달리 감시카메라가 한대도 없다.
이때문에 범인중 1명이 수표제출에서부터 금고인출까지 한은직원과 함께 행동을 했는데도 정확한 인상착의가 잡히지 않아 수사에애를 먹고있다.
구미=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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