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전술이다" 부인으로 일관-成씨자매 잠적 北측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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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성혜림(成蕙琳)씨 자매등의 「서방세계 도피」와 관련,평양은 침묵하고 있다.『이는 완전히 조작된 얘기며 기만전술』이라는 모스크바주재 북한대사관 관계자의 성난 논평이 지금까지 알려진 유일한 반응이다.그리고 우리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다른 사실은대동강 상류의 김정일(金正日) 거주 15호 관사와 해외공작을 담당하는 3호청사및 국가안전보위부의 통신량이 급격히 증가했다는정도다.대북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황이 당연한 것이지만 평양에 싸늘한 긴장이 감도는 징조라고 판단 하고 있다.
성혜림씨의 위치로 보아 권력주변 정보와 사생활이 상당히 노출될 게 분명하다.특히 북한을 통치하는 김정일에 관한 중요한 사실들이 드러날 것이다.그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성혜림씨 일가가 스위스 제네바의 별장에서 사라진 직후에는 담당자들만 내밀히 움직였겠지만 한국언론에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3호청사및 국가안전보위부 전체가 비상사태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혜림을 평양으로 데려오라』고 지시했을게 확실하다.따라서 북한은 일단 해외에 파견된3호청사 및 국가안전보위부 관계자들을 유럽에 집결시켜 성혜림씨의 소재 추적에 골몰할 것이다.평양에서 「특수공 작조」를 유럽에 직파할 가능성도 크다.
성혜림씨 일가의 한국 망명을 추진하는 우리 정보기관과 북측 관계기관의 성혜림씨 일가를 둘러싼 숨바꼭질은 이미 한창이다.
물밑 움직임이 좀체 수면위로 떠오르지는 않겠지만 정보기관간 격돌이 예상된다.북한은 그러나 당분간은 러시아주재 대사관이 보인 반응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사건의 성격상 다단계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현 단계에선 비밀리에 성혜림씨의 소재를 파악해 평양으로 귀환시키는 작전을 펼 것이다.만일 북측 관계자들이 성혜림씨 일가를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경우 체류국과 송환을 위한 외교교섭도 펴나갈 것이다.북한은 서두르면 도리어 성혜림씨 일가의 망명을 재촉할지도 모른다고 판단,일단 신중하게 대처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성혜림씨 일가의 망명 결심이 분명한 이상 북한당국의 이같은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전망이다.그럴 경우 테러를 생각해 볼 것이다.대한항공 폭파사건이나 아웅산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북한은 필요하다면 테러를 감행할 수 있는 국가다.
북한은 소재파악과 귀환공작,체류국과의 외교교섭,그리고 테러 등 모든 수단에 실패하면 『한국 정보기관의 공작으로 인해 이같은 사태가 발생했다』면서 격렬한 비난과 함께 즉각 송환을 요구할 것이다.물론 송환 요구를 제3국이든 우리 정부 든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북한은 특히 한국측이 성혜림씨 일가의 신병을 확보한 상태에서 한국망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최대한의 강경책을 불사할 것으로 보인다.
유영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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