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무디스·S&P 신용등급 엉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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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그간 엉터리로 등급을 매겨 왔다는 사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조사 결과 드러났다.

뉴욕 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피치,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를 포함한 주요 신용평가사가 등급을 매길 때 규정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고려했다”고 보도했다. 충분한 검토 없이 등급을 매긴 경우도 많았다. SEC는 지난해 8월부터 이들 회사를 조사하면서 확보한 직원들의 e-메일 등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회사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2006년 12월 한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는 동료에게 보낸 e-메일에서 “우리가 더 큰 괴물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눈덩이처럼 규모가 커지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관련 부채담보부증권(CDO) 문제를 언급하면서다. “이 ‘카드로 만든 집’이 휘청거릴 때 우리 모두 부유한 상태로 은퇴할 수 있길 함께 바라자”는 말도 했다.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을 적당히 섞어 만든 CDO에 높은 신용등급을 줬다가 부실이 터지자 허겁지겁 등급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런 e-메일을 통해 신용평가사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문제점을 알고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신용평가사들이 수수료 챙기기에만 급급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본래 애널리스트는 자신이 등급을 매기는 금융상품이 자신의 회사 수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모르게 해야 한다. 그러나 SEC가 확보한 e-메일에는 애널리스트가 “회사 매출을 해칠까봐 (낮은)등급을 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회사가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냐”고 묻는 내용이 나왔다. 심지어 경쟁사보다 등급을 잘 줘 고객을 늘리기 위해 등급산정 기준 변경을 고려한 곳도 있었다. 한 애널리스트는 “우리의 평가 기준이 모두 공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에 쫓긴 애널리스트가 건성으로 평가한 경우도 많았다. 한 애널리스트는 동료와 주고받은 e-메일에서 “위험을 절반밖에 측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등급을 매긴다”고 털어놨다. “일이 너무 많고, 사람은 부족하다”며 “회사로부터의 압력도 심하다”고 말한 직원도 있었다. 대부분의 신용평가사는 2006년부터 CDO 관련 평가 업무가 크게 늘었지만 관련 인력은 별로 늘리지 않았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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