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 시시각각

선의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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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벌써 7월이다. 그사이 촛불시위의 함성에 파묻히고 경기침체의 그림자에 가려 별다른 이목을 끌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간 일이 있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고, 1일부터는 법 적용 대상이 종업원 100인 이상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으로 확대된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이 판에 무슨 대수냐고 하면 달리 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경제·사회적 쟁점을 한데 모은 결정체다. 노사 갈등, 양극화, 세대 갈등, 당위와 현실 등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최전선이다. 무엇보다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구체적인 개인들의 일자리와 미래가 걸린 문제다. 당사자에게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감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현실적인 문제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는 공기업 민영화나 공영방송 사수 같은 촛불집회의 흔한 이슈에도 끼지 못했다. 정부나 정치권은 물론 촛불시위에 그토록 열심이던 노동계마저 비정규직 문제에는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비정규직 문제는 한여름 무더위 속에 잊혀져 가고 있다.

1년 전 비정규직 보호법이 처음 시행될 때만 해도 이 법이 말 그대로 비정규직을 정말 보호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고용에 대한 불안을 없애준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논란은 있었지만 그래도 어렵사리 노사가 합의해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주겠다니 참으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뜻이 좋으면 결과도 좋을 줄 알았다. 이 땅에 아직 선의가 살아있고 그 좋은 뜻이 어려운 비정규직들의 삶에 줄기줄기 흘러넘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뜻이 좋다고 결과마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결과는 더 나빠졌다.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1년의 성적표는 비정규직의 삶이 더 고달파졌고 고용은 더 불안해졌음을 보여준다. 비정규직으로 2년간 근무하면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한 조항은 2년도 안 돼 일자리를 잃게 만드는 족쇄가 됐다. 인건비 부담이 늘 것을 걱정한 기업은 아예 비정규직을 뽑지 않기 시작했고, 이미 채용한 비정규직은 2년이 되기 전에 서둘러 해고했다. 비정규직이 맡았던 일은 외주로 돌리거나 파견 근로자로 채웠다. 지난 3월 통계청 자료를 보면 과거 1년간 비정규직이 13만5000명이나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고용조건이 좋은 기간제 근로자는 무려 32만1000명이나 줄어든 반면, 고용조건이 열악한 시간제 근로자와 파견·용역·일일 근로자 수는 15만5000명 늘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일자리는 줄어든 가운데 고용조건은 더욱 나빠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기업이 나서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에 앞장서면 될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업도 할 말이 많다. 당초 비정규직을 채용할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인건비 부담을 줄여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겠다는 것이다. 누군들 유능한 정규직만 채용해 번듯하게 대접하고 싶지 않겠는가. 인심좋게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돌릴 수 있다면 오죽 좋겠는가. 그러나 그러다 회사가 망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비정규직으로라도 일할 수만 있다면 좋다는 사람은 어쩔 것인가. 일부 악덕 사업주가 전혀 없지야 않겠지만 비정규직을 고용한 대다수 사업자들은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이달부터는 여건이 더 열악한 중소기업도 비정규직 보호법을 따라야 한다. 앞으로 더 많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없어지고 고용조건은 더욱 나빠질 공산이 크다. 선의가 낳은 폐해는 더 깊고 넓게 퍼질 참이다. 서둘러 법을 고치지 않으면 재앙은 조만간 현실로 바뀔 것이다.

병균을 옮기는 빈대를 잡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을 태워서야 되겠는가.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