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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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미스터 조와의 첫 경험때 아리영은 큰 통증을 느꼈다.미숙한 채 느닷없이 겪은 탓이었을 것이다.
며칠 동안 통증이 멎지 않았으나 의논할 상대가 없었다.어머니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고,미스터 조에게 물어보자니 부끄러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만에 통증은 사라졌지만 아리영의 불감증은 이때문에생긴 것이 아닌가 이제야 짐작된다.첫날의 고통이 의식의 밑바닥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나선생이 일본 고서점에서 사 부쳐준 옛책 「의심방(醫心方)」에 이같은 처지의 처방이 있는 것을 보고 그때 일이 새삼스러웠었다. 『동녀(童女)가 처음 교접(交接)한 후 피가 흘러 멎지않고 통증이 있을 때는 마유(麻油)를 발라라….』 『통증이 계속 멎지 않을 적엔 감초 두푼,작약 두푼,생강 세푼,계(桂) 열푼을 물 석되로 세번 끓여 단번에 마셔라….』 『쇠무릎지기 뿌리 다섯냥(兩)을 술 석되로 두번 끓여 찌꺼기를 걸러 세번에나눠 마셔라….』 「집험방(潗驗方)」이라거나 「천금방(千金方)」「옥방비결(玉房비訣)」등 중국의 옛책을 인용한 소위 비방(비方)들이 「소녀통(少女痛)치유법」의 제목 아래 줄줄이 엮어져 있는 것을 보니 아리영과 같은 경우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자신의 욕망만을 서둘러 앞세우는 남자들의 무심함이 잔인한 발자국을 처녀지(處女地)에 남기는 것이다.
그로부터 스무해가 지나서야 아리영의 잠재의식은 바로잡혔다.우변호사의 능한 사랑의 손길이 있어 치유는 비로소 가능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충분히 시간을 들여 섬세하게 낱낱이 짚듯 애무했다.아리영의 육신이 충분히 뜨거워지고나서야 그의 「불씨 얻기」작업은 시작되었다.
작업은 치열했으나 그는 늘 참아냈다.
『동(動)하되 그 정(精)을 내지 아니하면 항상 기력이 왕성하다』는 것이 고대 성의학의 기본이라 했다.
『한번 동하되 내지 않으면 기력이 강하고,두번 동하되 내지 않으면 이목(耳目)이 총명하고,세번 동하되 내지 않으면 지병(持病)이 사라지고,네번 동하되 내지 않으면 오장(五臟)이 편안하고,다섯번 동하되 내지 않으면 혈맥이 온전히 통 하고,여섯번동하되 내지 않으면 등과 허리가 튼실하고,일곱번 동하되 내지 않으면 다리 힘이 더욱 강건하고,여덟번 동하되 내지 않으면 온몸에 광택이 나고,아홉번 동하되 내지 않으면 장수를 누리게 되고,열번 동하되 내지 않으면 신명(神 明)으로 통한다』던가.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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