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52> 기술위원장 ‘회전문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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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A씨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주 일괄 사퇴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중의 한 명인 그는 지난 일요일(6일) 오후 웰컴투풋볼을 만났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런 얘기를 해 줬다.

“축구협회 이회택 부회장이 기술위원장이 될 겁니다. 내일 오전에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오후쯤 발표할 것 같습니다. 이미 다 정해놓은 수순이거든요.” 7일 오전 10시쯤 축구협회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에 이회택 부회장 선임’.

A씨의 말에 따르면 얼마 전부터 이 부회장이 “내가 기술위원장이 될 것”이라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전임 이영무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가 허정무 대표팀 감독과의 ‘파워 게임’에서 나온 줄 알았는데, 이는 부분적 진실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올해 임기가 끝나는 정몽준 회장이 자신의 후임으로 축구인 출신을 내정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또 “정 회장이 이 부회장에 대한 경력관리에 들어갔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

1970∼80년대 한국 축구의 용맹한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떨친 이 부회장은 이번에 두 번째 기술위원장을 맡는 것이다. 그는 2004년 6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기술위원회를 이끌었다. 그는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 시절, 2006 독일 월드컵 본선에는 진출했지만 대표팀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경기력을 보이자 자진 사퇴했다. 이 위원장은 당시에도 공식 기자회견에는 다른 기술위원을 내보냈고, 훈련장에서 만나 대표팀 전력에 대해 물어보면 흘러간 옛 이야기를 하거나 선수에 대해 지극히 주관적인 ‘인상 비평’을 몇 마디 툭툭 던질 뿐이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과의 인연도 재미있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이 부회장은 감독, 허 감독은 트레이너였다. 93년 포항 스틸러스 사령탑 자리를 이 위원장이 허 감독에게 물려줬고, 98년에는 허 감독이 전남 드래곤즈 지휘봉을 이 위원장에게 곱게 넘겼다. 참으로 아름다운 선후배 간이다.

전임 이영무 위원장도 ‘무능력, 무소신’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찌 됐든 그가 물러나게 된 것은 ‘무기력, 허무 축구’로 일관한 허 감독 대신 십자가를 진 것이라고 보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후임 기술위원장을 어떤 사람이 맡아야 할지는 자명해진다. 풍부한 축구 지식과 정보, 첨단 장비를 활용해 대표팀의 전력을 향상시키고,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맞붙을 팀을 철저하게 분석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이 부회장이 참신성·전문성·국제감각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시키는 분인지 묻고 싶다.

축구협회가 개혁을 외면하고 ‘돌려막기 인사’를 하는 동안 한국 축구는 20년 전으로 후퇴할 위기에 빠져 있다. 많은 축구인의 우려처럼 한국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탈락한다면, 그래서 한국 축구에 암흑기가 도래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이회택-허정무’ 라인인가, 정몽준 회장인가.

정영재 기자·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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