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票놓치는 '票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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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마키아벨리가 정치가에게 가장 강조한 사항중 하나가 백성들로부터 경멸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각정당과 정치인들이 다급한 것은 이해가 간다.
표가 될 만한 사람이면 누구인지 따져 보지도 않고 받아들이고 표를 위해서는 기준도 원칙도 돌보지 않는다.그렇지만 선거철의 이런 「표(票)정치」의 효율성이라 할까,실제 득표 효과를 과연제대로 계산이나 하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마키아벨리의 말처럼 정치권의 행동이 국민의 경멸을 받거나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표를 향한 그 애타는 노력이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할 위험성이 다분하다.
그러나 요즘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국민의 경멸을 받거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행태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득표효과 계산도 제대로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가령 민주당 최욱철(崔旭澈)의원이 YS를 만났나 안 만났나 하는 문제는 양쪽이 그렇게 길게 다툴 문제가 아니었다.사실은 만났든가 안 만났든가 둘중의 하나일 뿐 어려운 문제도 복잡한 문제도 아니었다.이런 간단한 문제를 초기에 해결하 지 못하고 길게 다투다 급기야 서로 고소까지 하는 전면전까지 가고 말았으니 이런 정치를 국민이 경멸하겠는가,탄복하겠는가.결국 안 만났다는 여권(與圈)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 승리로 여권에 어떤 득표효과가 있을까.더욱 웃기는 것은 고소가 있자 검찰이 잽싸게 崔의원과 민주당 대변인에게 출국금지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한창 선거에 바쁜 두 현역의원이 이만한 일로 해외로 달아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출국금지령이 그렇게기민하게 떨어졌으니 사람 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얼마전 YS가 국방부의 군인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을 때 경호실수로 불교계의 신경을 건드린 일이 있었다.어마 뜨거라 하고신한국당은 부랴부랴 사과성명을 내고 국방부장관은 조계사에까지 찾아가 사과를 했다.야당으로서는 충분히 즐길 만 한(?)사건이었다.경호실수를 왜 국방장관이 사과하느냐,군의 사기가 떨어진다고 쏘아붙였다.그렇지만 이 일이 있은 후 DJ와 JP는 그전부터 잡혀 있던 일정이라고 하면서 각기 조계사와 통도사를 방문했다.신문들은 이를 두고 여권쪽의 실수 를 틈타 불교계에 추파를던진 것이라고 해설했다.계산이 빠른 정치라면 설사 예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속 들여다보일 염려를 감안해 일정을 늦출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이런 얘기도 신문에 난 적이 있다.DJ가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이도록 하기 위해 회의장의 그의 옆자리에는 젊은 여성부대변인이나 여성당직자를 앉힌다는 것이었다.한마디로 실소를 금치 못할 얘기다.30년 이상 정치를 해온 70대 노( 老)정치인의이미지가 옆에 앉는 사람에 따라 몇 달 사이에 달라진다고 과연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그러나 선거철의 정당은 이런 데 신경을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일일이 들추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공천심사를 한다면서 근 5백명에 대한 심사를 20시간만에 해치우질 않나,세대교체와 개혁을 한다면서 공천은 유명인(有名人)일수록 유리한 여론조사로 결판을 내지 않나,도대체 논리도 명분도 없는 일들이수두룩하다.
과연 이런 정치가 국민의 경멸을 안받을 수 있으며,득표효과가높은 정치일 수 있을까.
결코 그렇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작은 시비라도 붙으면 반드시 이겨야 하고,틈만 보면 밀어붙이고,건수(件數)만 있으면 한 건을 하자는 이런 방식의 정치는 전투에서는 이겨도 전쟁에서는 지기 알맞을 정치다.자기들간의 이기고 지는 게 임에만 몰두한 나머지 국민의 시선이나 수준은 느끼지 못하는 정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정치권에서 나오는 소리들에 신물을 내고 있다.4.11총선이 매우 중요한 선거인데 비해 정치권에서는 시원한 소리,들을 만한 소리하나 나오는 게 없다는 말이 많다.나오느니 꾀죄죄하고 데데한 소리나 모습 뿐이라는 것 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선거정치가 너무 바닥을 맴돌고 있다.논리도 빈곤하고 명분도 부족하다.
최소한 국민의 경멸을 받지 않아야 한다.좀더 멋있게 싸우고 싸우는 테마의 격(格)도 한 단계 높여야겠다.미우나 고우나 또4년간을 맡을 사람들이기에 이런 고언(苦言)을 안할 수가 없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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